나도 한땐 최고의 사치품… 속만 파먹지 마라

 

정은지의 식탁식톡 (16) / 수박

알맹이 내용은 쏙 빼고 겉만 건드려, 수박 겉핥기라고요? 비유는 그렇게 해도 정작 저에 대해서는 겉핥기 하지 마세요. 생김새와 크기만큼이나 둥글둥글, 세상 꽉 차게 살고 있는 저, 겉만 핥아서는 안 될 수박이라구요.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저를 가리켜 ‘세상 제일의 사치품이요, 천사들이 먹는 과일’이라고 했다지요. 당시에는 귀한 과채였기에 맛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거라 여길지 모르지만, 친숙한 과일이 된 지금도 달리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 수박은 ‘박 속에 담은 물’ 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뜻처럼, 91~95%가 수분으로 이뤄져 오늘날 최고의 수분 공급 과일이라 할 수 있지요.

초록색 겉과 빨간색 속이 다르다는 괜한 핀잔도 있지만, 맛과 영양을 생각하면 저요, 겉이나 속이나 좋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알다시피 저는 껍질과 씨앗까지 다 먹을 수 있으니까요.

줄곧 버려지는 하얀 살 박힌 껍질에는요.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트룰린이 담겨있습니다. 시트룰린은 혈관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해 심장과 각 신체 기관에 보다 원활한 혈액 공급이 가능하도록 돕지요. 또한 수분 함량이 높아 체내 수분 공급에 좋고, 비타민C와 칼륨이 풍부합니다.

제 씨앗들에는 예전에 제 빨간 속살보다 귀하게 여겨졌을 정도로 좋은 영양소가 푼푼합니다. 단백질, 지질, 리놀렌산 등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떨어뜨리는데 도움이 되고, 혈압을 낮추고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중국에서는 제 씨로 간식거리를 만들어 먹고, 아프리카에서는 수박 씨 기름을 이용해 요리를 한답니다. 제 씨앗 100g에는 지질(lipid)이 22.90g 함유돼 있는데요. 이 지질은 영양소 중에서 가장 많은 열량을 내는 물질이죠. 사실 빨간 과육에는 단백질이 부족한데, 제 씨가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씨 100g당 단백질이 19.30g 함유돼 있지요.

저는 붉은색 과채 토마토보다 3-6배나 라이코펜이 많습니다. 라이코펜이 뭐냐구요? 대표적인 항산화물질인데요. 우리 몸 속에서 세포를 손상시키고 면역체계를 혼란 시키는 유해산소를 막아줍니다. 라이코펜은 심장질환과 몇 가지 종류의 암을 퇴치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요. 특히 암세포 성장을 도모하는 주요 조절 인자인 IGF-1(Insulin like Growth Factors)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라이코펜의 월등 과일이라 할 수 있죠.

아무 때나 먹어도 수분 공급측면에서 좋은 저지만,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먹어보세요. 스페인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저는 운동을 한 뒤 발생하는 근육통을 누그러뜨려줍니다. 이 연구에서는 저를 갈아 만든 주스를 이용했는데요. 운동하기 한 시간 전에 수박주스 16온스(약 473㎖)를 마신 선수들은 근육통이 덜 발생했고 심장 박동수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앞서 말씀 드린 시트룰린이라는 성분 덕분입니다. 시트룰린이 동맥 기능을 향상시키고 혈관을 이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씀드렸죠? 이런 작용 때문에 운동뿐 아니라 저는 남성들의 정력에도 좋답니다.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비아그라와 같은 효과도 발휘한다지요. 만성 두통이나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저를 가까이 해보세요. 제 수분에는 마그네슘 등 탈수를 없애는데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해서 탈수로 인해 심해지는 두통을 완화시킬 수 있답니다.

그러나 분명 조심해야 할 사람도 있어요. 콩팥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제 안에 칼륨 함량이 높아서 신장의 칼륨 배설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한 요즘부터 여름까지 제철 과일로 가장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저 수박은 조선시대만 해도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귀하신 몸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을 보면 저로 인해 살벌한 응징이 가해진 사건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이야기들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세종 5년에 내시가 수라간에서 수박을 훔쳐먹었다가 곤장 100대 맞은 후 귀양살이 하게 됐다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연산군 일기에서는 수박을 구해오라는 명을 어긴 북경 길 사신의 집안을 단번에 몰락케 한 사건도 있습니다. 이 사신은 처형당하고, 가산을 몰수해 자식들을 쫓아냈다는 내용은 저마저도 섬뜩합니다. 이렇게 값어치가 높은 과채로 여겨져 저를 치하의 선물로 사용하기도 했죠. 영조 36년에는 공부에 열심인 유생들에게 수박을 주며 노고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어때요? 저, 결코 겉핥기 해선 안될 수박 맞죠? 그럼 오늘 퇴근길 가족을 위해 수박 한 통! 진짜 물보다 물 더 잘 만나신 겁니다.

씨 없는 수박에 정말 씨가 없다구요?

제 씨가 영양학적인 이점이 많다 해도, 사람들은 먹을 때 씨를 거의 뱉어냅니다. 씨 뱉기 귀찮아서 씨 없는 수박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런데 정말 씨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아직 덜 자란 하얀 씨들이 박혀있어요. 먹어도 크게 감지되지 않을 만큼 작고 부드럽기 때문에 없어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아 그리고 제 씨를 뱉더라도 모아뒀다가 깨끗이 씻어서 말리세요. 이 후 프라이팬에 소금 약간 넣고 볶아내면 술 안주거리로 좋습니다.

맛 좋은 수박이요? ‘꼭지’에 연연 마세요~

사람들은 그 동안 제 꼭지를 보고 신선도와 맛을 가늠했다고 하던데요. 얼마 전 뉴스에서 들어서 아시죠? 제 꼭지와 신선도와는 상관없다는 사실. 오히려 꼭지가 제 영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낫습니다. 제 겉모습에서는 줄무늬가 선명한지를 확인하시고, 녹색이 진하고 그 모양이 좌우대칭이 좋은 것을 찾으세요. 손으로 통통 두드렸을 때 맑고 튕기는 소리가 나면 ‘그 놈 싱싱하군’ 생각하셔도 됩니다. 땅에 닿았던 꽃자리(배꼽) 부분이 작으며 노랗고, 눌렀을 때 탄력이 있으면 달고 맛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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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 기자 jeje@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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