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찾아 헤매다 돈 잃고… 목숨 잃고…

 

퇴직공무원 B씨는 말기 담도암 진단을 받고 ‘최신 유전자 치료’를 받았다. 구토가 계속 되고 상태가 악화돼서야 그 약이 의학계에서는 인정받지 않는 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그는 온갖 통증에 신음하다가 지난 주 눈을 감았다.

기업인 A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췌장암 의심 판정을 받고 S대학병원에서 말기라는 확진을 받았다. 가족은 의사에게 “최고, 최신의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애원했지만, 주치의는 묵묵부답이었다. A씨는 스스로 ‘최고의 치료법’을 찾아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수지상세포 면역치료법’을 알게 돼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에 곁들여 국내에서 ‘맞춤형 유전자 치료’도 받았지만 오히려 암이 악화됐다. 가족들은 주치의로부터 나중에 둘 다 의료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치료법이라는 설명을 듣고 망연자실했지만 때는 늦었다.

난치성 암이나 희소 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절망하고, 고개를 들어 ‘지푸라기’를 찾는다. 그러나 해외에서 주목을 받는 최신 치료제나 맞춤형 신약은 건강보험 시스템에 적용되지 않기 일쑤다. 환자가 돈을 부담한다고 해도 의사는 처방을 꺼린다. 의사가 신약의 효과를 기대할만 해도, 나중에 나쁜 결과로 이어지면 병원에서 치료비를 환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노리는 의료 사기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수치세포 치료, 암 백신, 맞춤형 유전자 치료 등 얼핏 보면 과학처럼 보이는 치료법들이 ‘기적을 노리는 환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기적을 기대하는 환자는 수 억 원을 쓰고 고통만 짊어진 채 세상을 떠난다.

“제 환자 가운데 말기 췌장암 환자 4명이 암 세포가 사라진 상태에서 1년 이상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환자에게 맞는 약을 처방하면 ‘기적의 확률’은 올라가지만, 이때에는 의사가 불이익을 각오하고 처방해야 합니다.” -S대학병원 종양내과 P교수

보건당국은 비급여 항암제에 대한 규제가 완치 확률이 낮은 항암제에 암 환자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정 항암제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제약사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제약사에게 끌려가지 않는 과정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폐암 치료제 잴코리는 건강보험 적용 심사에서 2차례 탈락한 끝에 지난 1월 환급형 위험분담계약(RAS)제를 통해 급여 관문을 겨우 통과했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너무 적고 효과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주요 탈락 이유였다. 특정 약이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와 정부의 협상 과정이 필요하다. 제약사는 약효와 그간의 개발 비용 등을 이유로 약값을 비싸게 부르고, 정부는 이를 현실에 맞게 깎으려 하기 때문에 협상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보건당국은 이 과정에서 약효 대비 효과를 검증하는데, 환자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비싼 약을 처방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잴코리가 필요한 폐암 환자는 25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비싼 비급여 약을 사먹는 환자는 6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보험공단 관계자는 “제약사는 환자가 적을수록 약값을 높게 매겨 이익을 보전하려고 한다”면서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비급여 약제라도 무턱대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 맞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희귀암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지고, 희귀 난치병 환자가 자신에게 맞는 약을 처방받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P 교수는 “비급여 항암제에 대해 처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약이 환자를 몇 개월밖에 못 살리는데 여기에 막대한 돈을 투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자신의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할 지 의문”이라면서 “결국 환자가 사이비 의료에 빠지는 문을 열어주는 격”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요즘에는 환자 측에서 해외 자료를 검색해서 의사들에게 약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신약에 대한 정보가 다 열려 있는데 이런 식의 규제는 의사와 환자의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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