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강이 사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이끌까

 

올해 초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쇼크사한 9살 초등학생 고 전예강양 사망사건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이끌어낼지 관심이다.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를 골자로 한 이 개정안은 이른바 ‘예강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지난 3월 국회에서 발의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전양 유족은 21일 오전 신촌 연세암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강이 사건에 대한 해당 병원의 진상규명과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통한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 제도’의 도입을 촉구했다. 또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진의 미숙한 시술로 환자가 고통 받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도화선 된 ‘예강이 사건’

유족에 따르면 지난 1월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전양은 적시에 이뤄지지 못한 수혈과 뇌수막염 오진으로 7시간 만에 쇼크로 숨졌다. 도착 당시 전양의 적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정상인의 1/3에 불과했는데도 응급실에 온 지 4시간 만에 수혈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수혈 직후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 1년차 2명이 번갈아 투입돼 마취 없이 요추천자를 5차례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유족측은 주장했다. 요추천자는 척추에 바늘을 집어넣어 뇌척수액을 뽑아내는 뇌수막염 검사 시술이다.

유족이 제시한 이 병원 소아혈액종양과의 협의진료의뢰서에는 “골수 검사 등이 필요할 수 있으나, 현재 전반적인 환자 상태가 저하돼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적혈구와 혈소판 수혈을 신속하게 진행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의뢰서는 전양이 숨진 지 2시간 뒤에야 응급실에 도착했다.

유족측은 현재 병원과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유족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우성의 이인재 변호사는 “뇌수막염을 의심해 요추천자를 실시한 것은 오진”이라고 강조했다. 피검사 결과, 급성백혈병을 의심해 골수검사를 진행해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적혈구 수혈이 시급한 상황에서 숙련되지 않은 전공의 1년차들이 요추천자를 시도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강이 사건에 대해 병원측은 “최선을 다해 치료했고, 과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계 드러낸 의료분쟁 조정중재

소송에 앞서 유족은 전양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냈다. 그러나 이 조정신청은 병원의 거부로 각하됐다. 현행법상 이는 가능하다. 의료분쟁조정법 27조 8항은 조정신청을 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거나, 14일간 응답하지 않으면 각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족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액의 장기 소송을 진행해 의료인의 과실을 직접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예강이 사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된 도화선이 됐다. 피신청인의 동의와 상관없이 일단 자동으로 조정절차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 이 개정안의 골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오제세 의원이 발의해 이른바 ‘오제세법’으로도 불린다. 지난 2011년에 제정된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조정 개시율이 낮아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1년간 실제 조정이 이뤄진 사례는 전체 신청건의 40%에 그쳤다. 조정이 개시되지 않은 나머지 사례의 66%는 의료인이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였다.

‘오제세법’ 국회통과 여부는…

이 개정안의 국회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개정안에 포함된 ‘원용금지’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다. 개정안을 보면 조정과정에서 제출된 자료는 민사소송에 원용할 수 없다. 중재가 결렬돼 다시 소송을 진행할 경우 피해자들이 조정중재원에 제출한 자료를 법원에서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중재안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의료계는 의료분쟁조정 참여를 의무화하면 조정신청이 남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도 무너질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전양 유족은 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의료사고 피해구제와 안전한 응급실 치료환경 조성을 위한 대국민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지난 6월부터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지금까지 6400여명이 참여했다. 유족측은 기자회견 이후 릴레이 1인 시위를 잠정 중단하고, 병원의 진정성 있는 진상규명을 일단 기다릴 방침이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이날 “예강이 사건은 더 이상 한 가족에게 닥친 불행한 의료사고가 아닌 전체 환자들을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공익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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