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빠지는 의료소송, 중재로 해결?

신현호의 의료와 법

“송사 3년에 기둥뿌리조차 남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소송이든 소송이 얼마나 오래가고 돈이 많이 드는지를 드러내는

속담입니다. 많은 소송 가운데 특히 의료소송은 일반소송보다 시간은 3배 이상 걸리고

그만큼 돈도 많이 들지만 승소율은 30% 안팎입니다.

대다수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소송 자체를 꺼립니다. 의료소송은 의료사고로 1차

피해를 입고, 소송에서 2차 피해를 입어 사회 불신이 커지는 대표적 소송입니다.

환자가족들은 소송보다 폭행, 협박, 시위, 농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를 방어하는

의료인은 견디다 못해 병원 문을 닫거나 심지어는 자살 등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실정이었으나 1963년 도쿄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수혈 매독

감염 사건을 계기로 ‘의사배상책임보험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의사배상책임보험제도는

말 그대로 의료전문서비스를 받고 신체장애가 생기거나 사망했을 때 의사나 병원

등 피보험자가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하고 이때 입게 되는 손실을 보상하는 보험이다.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해 1981년 의료법에 의료심사조정제도를 도입했지만 문화적

차이로 실패했습니다. 그 후 소비자기본법을 개정해 한국소비자원에서 의료분쟁조정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1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을 조정해 실효성이 크지 않습니다.

대법원도 소송이 길어지고 소송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지방법원에

민사조정센터를 만들어 의료분쟁조정에 나섰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조정센터는 협심증

수술 중 심장카테터로 혈관을 뚫어 과다출혈로 환자가 사망한 명백한 의료사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조정센터는 진료기록감정이나

증인신문 없이 기록만으로 손해배상조정을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운영은 한계가 있었고 누구나 공감하게 됐습니다.

시민사회단체와 의료인 단체에서는 근본적 해결을 위해 지난 20여 년 간 의료피해구제

법률제정을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입법논의 과정에서 분쟁조정기구의 법적

지위, 무과실보상제도, 형사책임특례, 의료기관 난동자 가중처벌, 의료분쟁 시 제3자

개입 금지, 설명의무의 법정화 등 많은 쟁점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도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의료분쟁이 사회 문제가 되고, 외국인환자유치가 국가 신 성장 동력사업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자 ‘의료분쟁조정과 피해구제를 위한

법’이 제정돼 이번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소송이 아닌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전담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법률은 1년 후부터 발효됩니다.

이 법률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무엇보다 진료기록 감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감정결과에 당사자가 모두 승복하고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조정중재제도가

의료사고가 불가피했음을 변명하는 수단이 되거나, 배상시점을 질질 끄는 방편이

되어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환자 측도 ‘아니면 말고’식으로 일단

조정신청을 해놓고 보자는 마음가짐이라면 이 제도는 더욱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환자는 안심하고 진료 받고, 의사는 소신껏 진료하는 환경을 가능케 하는 훌륭한

제도와 법률로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들 몫입니다. 법은 만드는 것보다 국민이 얼마나

잘 따르고 활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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