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불편해하면 그땐 의사가 아니죠”

국내 첫 여성 비뇨기과 의사, 이대목동병원 윤하나 교수

“요로 협착 수술을 받은 40대 남성이 있었어요. 일을 하다가 성기 부분을 다쳐

수술하게 된 케이스였죠. 몇 주일을 아침마다 소변과 성기 상태를 점검하고 소독해줘야

했어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치료를 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발기가 됐다고. 만지작거리는 저의 손 자극에 반응해서 발기가 된 거예요.

그 남성분은 다치고 난 후 발기가 안 돼 남자의 자존심을 잃었다며 상심하고 있었대요.

제 손에 의해 발기가 됐으니 ‘명의도 이런 명의 없다’며 연신 인사를 하는 거예요.

레지던트 시절에 얼떨결에 ‘명의’가 됐어요.”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윤하나 교수(37)가 15년 전 이대동대문병원에서

레지던트 때 겪었던 에피소드다. 국내 처음 비뇨기과에 발을 내민 여주인공이라서

재밌는 일도 많을 것 같아 한 가지만 얘기해 달랬더니 말해준 ‘발기 사건’.

윤 교수가 레지던트를 마치고 여성 비뇨기과 교수가 된 지도 이제 10년이 다 돼간다.

지금은 비뇨기과 여교수라고 해서 별나게 보일 것도 없지만 윤 교수는 비뇨기과가

항상 새롭다. 환자들에게서 새로운 얘길 듣고, 새로운 마음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많다는 것은 전에는 비뇨기과를 찾길 꺼려했던 사람들의 발길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란다.

늘고 있는 것은 환자뿐이 아니다. 윤 교수에 이어 국내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윤 교수는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금녀 구역’이었던 비뇨기과에

슬슬 ‘여풍’이 불고 있다며 좋아한다. 실제로 올해 의협 창립 100주년 행사에서

‘여성 전문의 역할’이란 주제로 그가 발제한 내용에 따르면, 비뇨기과 여의사들은

현재 27명 정도다. 내년이면 3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비뇨기과 의사 성비를

따지면 적은 수이지만 처음 윤 교수가 비뇨기과에 들어섰던 때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남자 자존심 세워준 15년…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 증가 추세

“음지에 있다가 양지로 나온 느낌이라 할까요? 친근한 비뇨기과가 돼가고 있어

다행이에요. 특히 앞으로 국민소득이 더 높아지면 죽고 사는 병보다 살 만해져서

생기는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질 거라 봐요. 그런 의미에서 비뇨기과는

더욱 중요해지고 부각되는 과목이라 할 수 있어요.”

초창기만 해도 나이 든 환자들은 윤 교수를 여의사인 줄 모르고 아가씨 혹은 간호사라고

부르는 일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여의사가 비뇨기과에 있을 거란 생각은 환자도

의사도 하지 못했다.

“국내 최초란 말, 이젠 좀 식상해요. 하지만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건 사실이에요.

지금은 별다른 느낌이 없지만 제 인생에 붙여진 특별한 타이틀인 만큼 많은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 됐으면 좋겠거든요.”

지금에야 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비뇨기과 여교수가 됐지만 첫 여성 비뇨기과 교수

타이틀을 얻기까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남자 의사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는

일들이 많아 부당한 대우도 많았다. 요즘은 많이 완화됐으나 그때만 해도 남녀 구별해서

과를 나누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료볼 땐 여자가 아니에요, 단지 의사일 뿐”

윤 교수는 이화여대 의대 본과 3학년 때 수술실에서 가운을 입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반외과나 정형외과 쪽은 아무래도 부담이

컸다.

“일반외과, 정형외과 쪽으로 가려면 공부를 죽도록 해야 했는데 솔직히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수술도 하고 싶었는데 내과 쪽도 관심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었어요.

비뇨기과는 기본적으로는 외과계열이지만 비뇨기과 관련 질환은 내과 쪽과도 매우

긴밀히 연결돼 있어요. 방광, 신장 등 내과 계통과 밸런스를 맞춰 진단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 점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평생 할 공부 한다 치고 비뇨기과를 선택하자

마음먹고 독하게 공부했죠. 제가 한번 하고 싶으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거든요.”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모름지기 의사란 ‘환자 우선주의’여야

한다는 철칙도 이어받았다. 의사를 마주했을 때 환자가 불편해하면 그땐 의사가 아니라고.

산부인과라 여성의 성과 마주한 일이 많았던 아버지가 환자에게 친근한 의사로 보였듯이

윤 교수도 남성의 성과 마주할 땐 그 말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간혹 남자 환자들은 젊은 여의사를 보고 당혹해하기도 한다. “의사는 진료를

볼 때, 남자여도 남자가 아니고, 여자여도 여자가 아니에요. 중성이라 해야 할까요?

남성의 성기를 보고 만진다 해서 환자가 절대 남자로 보이진 않거든요. 제가 여의사라서

불편해할 땐 환자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저는 여자가 아니라고. 그래도 제가

여자인 게 불편하다면 다른 남자의사를 불러다 드릴까요? 하고 말이죠. 하지만 장동건이나

원빈이 오면… 그 땐 가슴이 좀 떨릴 것 같아요. 호호.”

중년부부 성상담-청소년 성지식 전달에도 힘써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많은 환자들이 비뇨기과라는 진료 과에 대해 거부감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편하게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 단골 환자도

늘었다. 남편과의 문제를 터놓고 상담하러 윤 교수를 찾아오는 40, 50대 아줌마들도

많다. 때론 전문가 입장에서, 때로는 같은 여자의 마음으로 그들의 고충을 상담해주는

일도 즐겁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에 윤 교수의 이름이 미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후(Marquis Who’s Who)’ 2008년 판에 등재되기도 했다.

윤 교수는 또한 성인 환자들에게 성관련 문제를 상담해 주면서 받은 많은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을 묶은 ‘내가 훔쳐보는 거울 속의 나’(이지북)란 책을 내기도 했다.

SS501, 슈퍼주니어 등 유명 아이돌 가수들과 함께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해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힘썼다. 지금은 다소 꺼려할 수도 있는 비뇨생식기계

질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싶어 요로생식기감염학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뇨기과에 첫 발을 디딘 여성 주인공이 됐지만, 비뇨기과 여의사는

외국에선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산부인과나 피부과에 남자의사들이 많아졌듯이

비뇨기과도 성 구별 없이 능력과 재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전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후의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죠.”

정은지 기자 jej@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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