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경솔하게 울지 않는다

[이성주의 건강편지]미네르바의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경솔하게 울지 않는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돼 온 나라가 떠들썩하네요.

미네르바는 아시다시피 로마신화의 전쟁, 시, 의학, 지혜, 상업, 기술의 처녀신입니다. 음악을 창시했다고 알려져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음악다방 ‘미네르바’의 이름이 됐죠. 시와 지혜의 신이어서 한 문예계간지의 이름이 되기도 했고요. 여성분들은 화장품 이름을 떠올리시기도 하겠네요.

30대 초반의 박대성 씨가 미네르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박 씨의 탁월한 예측력을 얘기하고 있지만, 글쎄요, 제가 경제에 ‘무식쟁이’어서인지, 그의 글을 읽어도 기존의 전문가보다 뭐가 탁월한지 잘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다만, 많은 분에게 공감을 일으켜 응어리진 마음을 풀 수는 있겠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지만, 지금 단계에서 법적 처벌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무명(無名)의 누군가가 주장한 것인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명인사가 돼 사회적 영향 때문에 처벌한다는 논리는 뭔가 어색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미네르바 신드롬’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느낄 수밖에 없어 가슴이 아픕니다. 많은 분들이 수많은 분석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지성인의 위기와 이 때문에 생기는 심각한 의사불소통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는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그라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TV와 신문에서는 ‘사이비 지식인’이 범람하고 있으며 이는 곧 지성인 전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지성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된 듯합니다. 제도권 지성에 대한 불신이 결국 미네르바의 등장을 갈구한 것인지도 모르죠.

지성의 위기는 사회의 뿌리를 흔들 수도 있지만, 모두가 여기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걱정입니다. 곳곳에서 ‘초딩’이 현인(賢人)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사회는 분명 병적 사회입니다.

지성인, 현인은 원래 신중합니다. 대체로 목소리도 낮습니다. 말도 순합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말은 로마 신화에서 미네르바가 부엉이에게서 지혜와 명성을 얻는다고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게오르그 헤겔의 저서 《법철학》의 문장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가 질 무렵에 비로소 날개를 편다”는 문장 말입니다. 원래 뜻은 지성은 시대를 앞서가기보다는 시대가 끝날 무렵에 빛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급변하는 21세기에 ‘뒷북 주장’을 대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인(賢人)의 신중하고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주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미네르바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이것이 지성의 위기에 대해 생각하고 대책을 찾는 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 모든 사람이 등불을 들고 현인을 찾아다녔던,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될 필요는 없겠죠. 자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애쓰는 풍토가 확산되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요? 구석구석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눈을 꿈뻑꿈뻑, 윙크하는 사회라면 ‘미네르바 현상’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죠? 이 갈라진 사회에서 지성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줄 알면서도, 오늘은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성의 토양 닦기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것처럼 소통이나 보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인간은 환경에 대한 지식을, 가령 그것이 아무리 황당무계한 것이라도 꿀꺽 삼켜버린다”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시미즈 가타로의 《유언비어의 사회학》에서

어쩌면 언로를 막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들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과 저만이라도 귀를 열고, 듣기 시작하면 말이 통하고 지성의 토양이 풍부해지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요? 

①남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고 애쓴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서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잘못이다.
②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 대화할 때에는 상대방의 눈을 맞추고 긍정의 고갯짓 등을 통해 맞장구를 친다.
③가급적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중간에 말을 자르는 등 결례를 하지 않는다.
④자신을 토닥이는 말보다는 자신에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⑤신문을 제대로 본다.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 전에 나와는 무슨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며 본다.
⑥책을 읽고 가족과 토론한다. 토론할 때에도 잘 듣는 데 신경을 쓴다. 대체로 무지할 수록 비판부터 한다.
⑦주장을 강요하기 보다는 남의 주장을 들어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주장을 자꾸 퍼주면 자기 그릇이 비고, 남의 주장을 자신의 그릇에 담으면 풍족해진다.

오늘의 음악

오늘은 몇 년 전 이날 세상을 떠난 가수 두 명의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2004년 눈을 감은 랜디 반워머의 ‘Just When I Needed You Most’와 2003년 세상을 등진 모리스 깁이 속한 그룹 비지스의 ‘Stayin’ Alive’, ‘More than a Woman’입니다. 앞의 곡에서는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하려 할 수 있다’는 가사가 오늘 글과 관련해서 생각의 여지를 남기네요. 뒤 곡에서 언제나 조용한 모리스의 마지막 인사가 묘한 여운을 남기고요.

♫ Just When I Needed You Most [랜디 반워머] [듣기]
♫ Stayin’ Alive [비지스] [듣기]
♫ More than a Woman [비지스]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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