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 수술 잘 됐다”던데…7일 만에 항문 피범벅?

고무밴드 치질수술(RBL) 부작용 60년만에 해결한 바나나클립

치질(Hemorrhoid)은 우리나라 사람들 가장 많이 걸리는 병의 하나다. 한해 60만명을 훌쩍 넘는다. 수술 많이 하기론 백내장 다음으로 2위고, 입원환자 수로는 8위(2022년)나 된다. 여자가 더 많이 걸린다. 40~50대가 가장 많지만, 20~30대 젊은 환자들도 그에 못지않다.

심한 정도에 따라 1도부터 4도까지로 나눈다. 치핵이 항문 밖으로 완전히 돌출해버리기 이전 단계(1~3도)까지 가장 많이 하는 수술법이 바로 ‘고무밴드결찰술’(RBL, Rubber Band Ligation).

직장 벽에서 튀어나온 치핵 뿌리를 둥근 링(ring) 모양 고무밴드로 단단히 묶어 치핵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 확장된 부분 혈류를 막고 영양 공급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고무밴드결찰술. [사진=웰니스병원]
메스로 절제하는 것보단 피가 덜 난다. 통증이나 합병증도 적다. 당연히 일상생활 복귀도 빨라, 60여 년 전부터 대장항문외과에서 가장 많이 쓰는 수술법의 하나가 됐다.

하지만, 고무밴드결찰술에선 피할 길 없는 부작용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연성 출혈’(DB, Delayed Bleeding). 수술하고 1주일 정도 지나 항문에서 갑자기 출혈이 생기는 것.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치질 수술 후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합병증이다.

원인은 여럿이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것이 치질 수술에서 나타난다. 대변이 지나가며 고무밴드에 묶여 수축된 치핵까지 함께 떨어져 나간다. 그때 치핵 속에 있던 ‘상치핵동맥’(SHA, Superior Hemorrhoidal Artery)이 함께 끊어지는 것. 아무래도 고무밴드다 보니 혈관까지 강하게 묶진 못하기 때문이다.

큰 혈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맥이 터진 것이기에 출혈량이 적지 않다. 피가 직장에 고여 있다가 3~4시간 후에 항문 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변기에 앉아있다 갑자기 저혈압 상태에 빠지거나, 출혈성 쇼크로 쓰러질 수도 있다. 집에 혼자 있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면 특히 위험하다. 119 도움을 받아야 할 응급상황.

“치질 수술 후 지연성 출혈, 많게는 8%까지”

부산 웰니스병원 강동완 병원장은 “지연성 출혈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오는 경우가 보통은 수술 환자의 3~5%, 많게는 8%에까지 이른다”고 했다. 나이 많은 노인은 더 위험하다.

10여 년 전부터 그는 이 문제 해결에 천착해왔다. 먹다 남은 과자를 봉지에 담아둘 때 쓰는 플라스틱 클립에서 힌트를 얻었다. 바나나클립(BANANA-Clip). 클립 한쪽 모양이 바나나처럼 휘어져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느슨한 고무밴드와 달리 클립으로 치핵 뿌리를 강하게 결찰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치핵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게 된다. 고무와 다른, 폴리머 클립의 특성 차이다.

바나나클립결찰술. [사진=웰니스병원]
그는 이를 대한대장항문학회 영문저널(‘Annals of Coloproctology’, 2023)에 발표했다. 저명한 국제학술지 ‘티메’(Thieme) 등에도 여러 차례 인용됐다. 지난 12월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평가유예)신의료기술’로도 선정됐다.

고물밴드결찰술의 또 다른 부작용, ‘직장협착’(rectal stenosis) 문제도 해결했다. 치핵이 여러 개 있는 경우, 이들을 고무밴드로 묶어놓으면 항문으로 이어지는 직장 내부가 좁아진다. 대변이 나갈 길이 좁아지게 되는 것. 지금까지는 그래서 치핵 2개만 우선 묶고, 그게 다 나으면 나머지 치핵을 마저 묶어 떼내는, 2차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바나나클립은 그럴 필요가 없다. 강동완 병원장은 “바나나클립으로 묶으면 3개 이상 치핵도 동시에 묶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치핵들이 항문 쪽 수직 방향으로만 수축하기에 대변이 가는 길을 크게 좁히지 않는다.

[사진=웰니스병원]

“치질 치료의 혁신적 솔루션”

인도에서 치질 수술을 연구하던 한 의사는 국제학술지(‘Journal of Coloproctology’)에 “치질 치료 분야의 혁신적인 솔루션”이라는 레터(letter)를 보내기도 했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 이익이 되도록 치료 옵션 지평을 크게 넓혀주었다”는 것이다.

국내 대장항문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지난 60년간 항문 수술 중심에 있던 ‘RBL’(고무밴드결찰술)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에 바나나클립결찰술은 빠르게 해외로도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K-헬스(Health)’ 모범 사례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것. 국내와 일본에선 이미 특허를 받았고, 미국과 중국에도 특허를 출원했다. 거기에다 일본, 인도, 덴마크 등 EU엔 의료기기 판매 허가를 신청해 둔 상태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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