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에 소리 선물한 가수… “음악이 주는 행복 나누고파”

인공와우, '말 언어' 소통 가능성 열어...비투비 현식, ‘사랑의달팽이 소울리더’ 위촉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소재 사랑의달팽이 사무실에서 비투비 임현식 씨가 코메디닷컴과의 인터뷰 중 수화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에 담긴 수화 동작은 ‘잇다, 연결’이라는 의미다.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을 후원하는 기부를 독려하기 위해 후원과 각종 대외활동, 캠페인 등을 함께 하는 소울리더와 소울더팬 제도를 운영 중이다. [사진=사랑의달팽이]
“곧 아이가 현식 님의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2022년 태어난 김지은(가명) 어린이는 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선천성 청각장애의 하나인 ‘청신경 저형성증’이었다. 예쁘고 정확한 소리를 들으려면 청신경이 두꺼워야 하는데, 아이의 청신경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얇았다. 그러나 인공와우 수술이후 지은이는 달라졌다. 세상의 소리와 연결된 아이는 이제 엄마, 아빠, 언니의 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다.

지난달 31일 아이돌 그룹 비투비의 멤버 임현식(31) 씨가 청각장애인을 돕는 비영리 단체 사랑의 달팽이의 여덟 번째 소울리더로 위촉됐다. 위촉식에서 나온 영상에서 지은이 엄마는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비투비 멤버 임현식 씨에게 감사 메시지를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 아이가 노래들 듣고 따라 부르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씨는 지금까지 7명의 아이에게 소리를 선물했다.

청각장애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장애 유형이다. 전체의 16%를 차지하며 약 42만5000명 정도다. 예전 청각장애인들은 손으로 소통하는 수화에 의존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귀’를 만들어 청력을 회복하게 돕는 인공와우수술 덕분에 큰 변화가 생겼다.

1970년대 후반 개발돼 국내에도 1980년대부터 도입된 인공와우수술은 추가 재활치료가 필요하고 음역 폭이 일부 제한(20~2만 Hz 대비 500~4000Hz)되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도록 돕는다. 블루투스 기능까지 구현돼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등 지속적으로 성능이 개선 중이다.

소리를 선물하는 인공와우수술이란?

청각장애는 크게 감각신경성 난청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달팽이관 안에 소리를 듣는 세포인 내·외유모세포의 손상(감각성)과 달팽이관과 뇌를 이어주는 청신경, 뇌에 소리신호를 전달하는 청각 중추의 손상(신경성) 때문에 청력이 저하되는 현상(난청)이다.

선천적, 후천적으로 원인은 다양하다. 후천적으론 중이염과 각종 염증, 이독성(耳毒性) 약물 부작용, 소음 환경, 혈액순환 문제 등을 꼽을 수 있고, 고령화에 따른 노화성 난청도 흔해지고 있다.

다만 다른 장애 유형에 비해 선천적 발생 빈도도 높다. 국내에선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난청 유무를 확인하는 청각선별검사를 시행하는데, 여기서 1000명 중 1명꼴로 난청이 나타난다.

의료진은 생후 3개월까지 지켜보며 선천성 난청을 확진한다. 이때부터 6개월 이전까진 살아있는 청력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 청각 재활치료를 진행한다. 이때 예후가 좋지 않으면 청력 회복을 위해 인공와우수술 시행을 결정한다. 최근엔 대체로 생후 1년 안에 인공와우수술을 진행한다.

수술 시기가 늦을수록 청력 재활과 언어발달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들 아동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소리’ 자체를 인지하는 일부터 배워야 한다. 또한, 청력 손실이 오래될수록 말을 알아듣는 청신경과 청각 중추가 퇴행하기 때문에 인공와우의 효과도 줄어든다.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박시내 교수는 “인공와우는 고도 청각 장애인들에게 정상 청력을 선물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대단한 의료 기기임이 분명하다”면서 “과거에는 수화로만 대화할 수 있었던 전농 아이들 조차 이제는 많은 경우 정상 청력인과 동일하게 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인공와우수술 모식도 [자료=분당서울대병원]
해당 수술은 귓속 달팽이관(와우)에 청신경을 대신하는 전극과 전기장치(내부장치)를 삽입하고 외부 소리를 전기 자극 형태로 바꿔 전달하는 장치(외부장치)를 귀 윗부분 머리 피부에 부착한다. 겉에서 보면 보청기를 착용한 것과 같이 보인다. 다만, 보청기와 다른 점은 말소리를 훨씬 또렷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선 약 1만5000명 정도가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서울아산병원의 최근 연구 결과에서 인공와우를 이식받은 아동의 성장 후 사회활동 비율은 비장애 아동과 유사한 수준까지 높아졌다. 2000~2007년까지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은 소아 환자 71명을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 진학률은 100%, 대학 진학률은 75%였으며 취업률 역시 62%에 달했다.

고령환자나 중등도 난청, 이명 환자들의 인공와우수술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박 교수가 수술한 환자 중엔 86세 노인도 있었다. 2000만 원가량의 수술비도 자비로 부담했다. ‘앞으로 5년, 10년을 살더라도 손주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게 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수술을 받은 환자는 너무나 만족하며 삶 속의 큰 행복, 소통할 수 있는 귀를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박 교수는 “인공와우를 통한 청력 재활의 치매 예방 효과도 보고됐기에 고도 난청을 지닌 고령 환자들의 뇌 건강을 위해서라도 인공와우가 적절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수술비용 부담이 적지 않기에 소통과 관련해 일상적인 환자의 불편함이 크지 않다면 환자들이 수술까지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고도 난청과 이명 등으로 인공와우를 선택하는 환자들에게 건강보험의 급여 지급 수준이 지금보다 확장될 수 있다면 더 많은 난청과 이명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해 인공와우에 대한 보험 급여 지원 범위 확대를 촉구했다.

청각장애 유소년이 악기를 다루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2003년 결성한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 연주단’의 모습. 지난해 11월 정기연주회 시작 전 단원들이 무대 뒤에서 사진을 촬영 중이다. [사진=사랑의달팽이]
‘높은 수술비 부담’ 나누는 희망의 손길…사랑의달팽이 통해 지난해 7000명 이상 기부

문제는 비용이다. 인공와우는 한쪽당 2000만 원이나 드는 고가의 수술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건강보험 급여가 일부 적용되지만, 제한적이라 여전히 청각장애인의 부담이 크다. 한 번의 수술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개인마다 잘 들리는 소리의 주파수를 찾는 치료 과정(맵핑)과 듣기 훈련, 언어재활치료 등이 필요하다. 바깥에 노출된 인공와우의 외부장치는 쉽게 파손하거나 자연적으로 고장나기도 한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의 경우 평생 6~7회의 외부장치 교체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쪽당 1000만 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하지만, 전액을 개인이 부담한다. 소리를 되찾아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결국 다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자선단체 ‘사랑의 달팽이’는 이처럼 경제적 상황 탓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고 있다. ‘소리를 선물하고 세상을 잇는다’는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청각장애인 2137명의 인공와우수술을 후원했고, 4400여 명의 청각장애인에겐 고성능 보청기를 지원했다. 지난해엔 이 과정을 7042명의 후원자가 함께했다. 최근에는 후원과 대외활동, 캠페인 등을 함께 하는 소울리더와 소울더팬의 활동도 활발하다. 지금까지 8명의 유명인과 팬클럽 4곳이 동참 중이다.

최근 소울리더 대열에 합류한 임현식 씨는 2017년 본인이 작곡한 비투비의 타이틀곡 ‘그리워하다’로 활동할 당시 수어 안무를 하면서 청각장애인 후원단체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매년 남몰래 사랑의 달팽이에 청각장애인을 돕기 위한 기부금을 전달했다.

임 씨는 “원래 (생색을 내는 것 같아) 기부하는 것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좋은 메시지와 취지를 널리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부 사실을 이야기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가수인 그는 ‘소리’가 주는 행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에게 ‘소리’를 선물하는 일이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 온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을 들을 때 너무 행복했다. ‘그리워하다’로 활동하면서 이렇게 소리가 주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게되면서 후원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기부를 하고싶다곤 생각했다. 실제로 후원은 내가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다. 평소 살아가는 일상에도 더 감사하게 되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좋은 소리,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된다.”

평소 사랑의 달팽이 후원 소식을 소중히 모아놓고 가끔씩 꺼내본다는 그는 앞으로도 후원을 받는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랑의달팽이의 후원으로 인공와우수술을 받은 청각장애 아동의 모습. 인공와우수술 덕분에 이제는 청각장애인도 수어가 아닌 ‘말 언어’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진=사랑의달팽이]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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