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부탁해’…치매 극복 희망 놓지 않는 의사들

[Voice of Academy 11-학회열전] 대한치매학회

대한치매학회는 평범한 일상생활이 어려운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난해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일상예찬 캠페인’에는 환자와 가족 50~6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이 무용가의 지도 아래 꽃을 수화와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대한치매학회]
“이런 명함을 본 적이 있는지요?”

양동원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교수)이 건네준 명함에 새겨진 이름은 여섯자였다. ‘기억을 부탁해’. 다름 아닌 대한치매학회 공식 유튜브 채널 명이다. 명함 뒷면엔 기억을 부탁해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새겨져 있다. 대한치매학회 차원에서 유튜브 채널 홍보를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양 이사장은 “환자가족이나 치매에 걸릴까 걱정하는 사람을 대할 때면 이 명함을 드린다”며 “치매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배울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한설희 나덕렬 한일우 김상윤 등 기틀 마련

대한치매학회는 요즘 유튜브를 활용한 대(對)국민 홍보를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치매 예방부터 증상, 치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영상을 70여 편 제작해 소개하고 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인지훈련법’ ‘전두측두엽 치매는 무엇인가요?’ 등이 현재 조회수 상위에 올라 있다. 콘텐츠가 풍부해지면서 일반인은 물론 의대생들도 참고하는 학습자료가 됐다고 한다.

이처럼 유튜브 채널로 국민과 소통하고 친숙해질 정도로 성장한 대한치매학회는 28년 전인 1996년 태동했다. 한설희 충북대 교수(현 건국대 교수)와 나덕렬 성균관대 교수, 이병철 한림대 교수 등 9명이 삼성서울병원에 모여 대한치매연구회 발족을 알린 게 시초였다. 얼마 지나 한일우(용인효자병원 원장) 김상윤(분당서울대병원 교수) 김범생(서울성모병원 교수) 최경규(이대목동병원 교수) 이재홍(서울아산병원 교수) 고(故) 유경무(고신대의료원 교수) 등이 합류했다. 이들은 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연구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지식 수준을 끌어올렸다.

국내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치매가 서서히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던 2002년, 30대와 40대 젊은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회는 도약을 꿈꿨다. 정식 학술단체로 거듭나자는 데 뜻을 모으고 그 해 5월 3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155명이 가톨릭대 의대 의과학센터 강당에 모인 가운데 한설희 초대 회장 체제의 학회가 출범했다.

“당시 모두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기존에 학회를 운영했거나 학회 행정 경험을 쌓았던 회원이 전무한 상태였는데, 치매연구회를 운영했던 경험만 믿고 다소 무도한 도전을 하게 되었죠. 학회 사무공간도 마련하지 못한 채 창립총회를 개최했습니다.” – 한설희 교수(대한치매학회 20주년 기념집)

대한치매학회에서 만든 유튜브 채널 ‘기억을 부탁해’ 홍보 명함. 명함 뒷면(오른쪽)에는 QR코드도 넣어 유튜브 채널로 바로 갈 수 있다. [사진=대한치매학회]
해외학회 나가 최신 지견 챙기려 ‘007작전’

학회 초창기, 당시만 해도 국제학회 참가 기회가 흔치 않았다. 그런 만큼 회원들은 국제알츠하이머컨퍼런스(AAIC)를 비롯한 해외학회에 나가면 최신 의술과 지식을 최대한 습득하기 위해 ‘007 영화’ 뺨치는 작전을 펼쳤다. 회원들이 각 강연장에 나눠 들어가 다른 청중들 몰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슬라이드로 펼쳐지는 강연 내용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촬영하다가 걸리면 다른 회원이 이어받아 촬영하는 식의 ‘남다른 학습법’으로 학회장을 누볐다.

이렇게 챙긴 자료는 바다 건너 한국으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이를 갖고 학회에 참가하지 못한 다른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공부하는 ‘랩업(wrap-up)미팅’을 열어 지식을 쌓아나갔다. 양동원 이사장은 “예전엔 현장에 가지 않으면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최신 지식을 얻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이같은 국제학회 참가에 더해 세계적 치매 전문가 국내 초청 강연을 통해 선진 연구동향을 흡수하면서 회원들 실력과 학회 위상이 갈수록 향상됐다. 더불어 2019년 5월 학회는 첫 국제학술대회(IC-KDA 2019)를 개최했다. 대한치매학회의 국제화를 공식적으로 알린 신호탄이었다. 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행사에 17개국 716명이 등록해 198편의 포스터를 발표했다. 임상의사는 물론 기초의학자, 신경심리학자 등이 모인 가운데 해외 석학들의 강연이 이어졌다.

2021년은 대한치매학회 위상을 드높인 한 해였다. 그 해 5월 학회는 당시 박건우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교수) 주도로 숙원 사업인 ‘대한의학회 정회원 가입’에 성공해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치매학회로 인정받았다. 일부 학회의 반발에 막혀 수차례 가입이 좌절된 아픔을 딛고 마침내 정회원이 된 것이다. 대한치매학회는 이로써 기존 학회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0월엔 2년 만에 다시 ‘IC-KDA 2021’ 학술대회가 열렸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는데도 23개국 508명이 참가해 성황리에 행사를 마치면서 국제학술대회로 자리매김했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지난해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2023 국제학술대회. ‘경계를 넘어: 글로벌 치매 솔루션의 발전’을 주제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는 35개국에서 800여명이 참석했다. 

새로운 20년…’누구나 믿고 의지하는 세계 속 학회로’

대한치매학회는 환자는 물론 환자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대표적인 게 2012년부터 펼치고 있는 ‘일상예찬 캠페인’. 치매환자와 가족 50~60명을 미술관, 박물관, 민속촌 등 야외로 초대해 일상생활 수행능력 개선을 위한 학습활동과 놀이를 하는 행사다.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들 곁에 함께 있는 동안 가족들은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맛볼 수 있다. 그야말로 잠시 동안 소소한 일상을 찾는 것이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잔 즐기고 싶은 마음들이 있잖아요. 근데, 치매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갈 수가 없어요. 불안하고 신경이 쓰여 커피 마시는 걸 포기하게 되죠. 일상예찬은 그런 일상을 잠시라도 찾는 자리가 되는 것이죠.” – 양동원 이사장

지난 2022년 창립 20주년, 약관(弱冠)의 나이가 된 대한치매학회는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있다. ‘치매환자에게 희망을 만들어주는 학회’라는 사명(使命) 아래, ‘누구나 믿고 의지하는 세계 속의 학회’라는 비전을 되새기고 있다. 임상의사는 물론 기초연구자, 신경심리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 다양한 직역을 가진 2600여 회원들의 역량을 총동원해 치매 극복 노력을 더욱 기울인다는 다짐이다.

“20년의 활동은 눈부셨습니다. 많은 발전이 있었고, 많은 활동이 있었습니다. 대한치매학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이 가능합니다. 다른 학회의 가는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남들이 안가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이제 눈을 들어 더 높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국제적인 활동을 넓히고, 아시아의 리더로서 그 역할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 김상윤 교수(대한치매학회 20주년 기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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