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 연구 증가에 윤리적 우려 ↑… ‘배아 재정의’ 요구도

'실험실 배아'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한 연구가 늘어나며 윤리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실험실 배아’를 포함한 배아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몇 년 간 인간줄기세포를 활용해 초기 배아의 일부 특징을 재현하는 인공적 ‘배아 모델’ 연구가 증가함에 따라 인간 배아에 대한 정의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셀(Cell)》에 발표된 오스트리아 스페인 미국 영국 네덜란드 생물학자들의 의견서(perspective)을 토대로 《네이처(Nature)》가 18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배아에 대한 법적 정의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정자와 난자의 수정 또는 복제(생식 능력이 없는 세포에서 난자로 핵을 옮기는 것)에 의해 만들어진 배아를 지칭한다.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배아는 보통 임신 8주차까지를 말하고 9주차부터는 태아(fetus)로 분류된다.

오스트리아 과학원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의 생물학자인 니콜라스 리브론 연구원을 필두로 한 5명의 의견서 필자들은 “태아로 발달할 잠재력을 획득한 경우는 모두 인간배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즉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실험실에 성장시키는 배아 모델도 태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면 인간배아로 간주하고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아 모델은 초기 배아의 발달과 유사한 방식으로 분화 및 조직화를 시작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ESC)의 군집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착상 직전 배반포기의 배아나 임신 8∼12주에 유산된 태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의미하며,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유도만능세포(줄기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재프로그래밍된 성숙한 세포)로도 배아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배아 모델에는 난황(노른자위)을 형성하는 배외세포와 태반을 생성하는 영양막 줄기세포처럼 자궁 내 지지조직의 전구세포도 포함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배아 모델을 사용해 실제 배아에 적용되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제약 없이 배아 발달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많은 국가는 수정 후 14일을 초과한 인간 배아를 체외에서 배양할 수 없다는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유산과 발달 결함의 원인을 알기 위한 후기 발달 단계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아닌 동물 모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영국과 이스라엘의 연구자들은 수정 후 8.5일 된 배아와 동등한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생쥐의 배아모델을 보고했다. 이 배아 모델에는 몸통 축과 초기 머리, 팔다리, 심장이 있었다. 인간 배아 모델은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지만 올해 같은 두 그룹이 수정 후 13~14일 된 배아 단계까지 체외에서 배양된 인간 배아 모델을 보고했다.

이러한 배아 모델은 자궁에 착상하고 난 뒤의 배아와 유사한 단계지만 자궁에 착상하더라도 태아로 발달할 수 없다. 많은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아돌기라고 불리는 수정 후 5~7일이 된 착상 전 단계의 배아 모델은 자궁에 착상될 경우 태아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ISSCR은 이러한 배아 모델을 ‘통합 배아 모델’이라고 부르며 과학 및 윤리 위원회의 신중한 검토 후에만 연구에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리브론 연구원과 동료들은 “과학적 발전으로 인해 배아 모델과 배아 사이의 생물학적, 따라서 윤리적, 법적 격차가 좁혀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미래에는 배아 모델이 ‘티핑 포인트’를 통과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배아와의 윤리적 구분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4월 일군의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배아줄기세포와 다른 세포 유형으로 만든 배반포를 원숭이의 자궁에 착상했을 때 임신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이런 임신은 모두 자연적으로 유산됐다. 이에 대해 리브론 연구원은 “가장 완전한 배아 모델이 언젠가는 개체를 낳는 배아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견서의 필자들은 배아 모델이 최소한 태아 단계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여부가 도덕적, 윤리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핵심 쟁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배아를 “배아 외 및 자궁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에 의해 지원되는 인간 세포 그룹”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 요소들이 결합되면 태아를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떤 태아 단계를 가리키는지는 더 논의해야 할 주제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에 대해 줄기세포 연구자인 예일대의 버니 소젠 교수는 배아에 대한 재정의가 “현재의 지식을 더 잘 반영할 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 보다 정확하고 포괄적인 논의를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며 시의적절한 문제제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 배아 모델 중에 이 기준에 근접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이를 공식화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영국 뉴캐슬대의 앨리슨 머독 교수(생식의학)는 이번 제안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배아 모델은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있으며, 이러한 초기 단계에서 변화를 시도하면 나중에 해결하기 어려운 원치 않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의견서는 다음 링크(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3)00807-3?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092867423008073%3Fshowall%3Dtrue)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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