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위해선 뭐든” … 불도저 부모, 무얼 밀어버리나?

[과잉양육 무엇이 문제인가 #1] 자녀에게 '혹독한 실패' 불러올 수도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보호는 오히려 자녀의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난 내 자식 위해선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이다.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다.”

‘과잉양육(hyper-parenting)’ 문제가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행동을 일삼는 부모들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주 서울시 서이초등학교 교실에서 20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서울교사노동조합 등 교사단체 중심으로 학부모 민원 관련 폭로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부 부모들의 과잉양육이 결국 교육현장을 망쳤다는 질타도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서이초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학부모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나날이 심각해지는 과잉양육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제’를 중심으로 한 양육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성심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명예교수는 “과잉양육 속에서 키워진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배워야 할 행동들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국 아동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독립심과 자립심도 못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물은 모조리 쓸어버려… 아이 ‘실패자’로 만들기 쉬워 

‘과잉양육’ 유형 중 최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문제로 떠오른 것이 제설기 부모 혹은 불도저 부모다. 아이들 주변을 맴돌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해 주던 헬리콥터 부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아이의 성공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조리 밀어버린다. 실패, 좌절 또는 기회 손실을 완전히 봉쇄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불도저 부모의 문제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은 학업 과정이나 친구관계, 학교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여다. 이들은 자녀의 학업 성적이나 명문대 진학,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한다. 자녀의 과제를 전부 도와주는 것은 물론, 모든 학습계획을 부모가 짠 뒤 아이는 이에 따르도록 만든다. 이런 행태가 대학 진학 뒤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불법적 일도 마다 않는다. 2019년 미국에서는 ‘위기의 주부들’로 유명한 배우를 비롯한 사회 부유층 수십명이 대학입시 비리로 연루됐다. 이들은 자녀의 진학을 위해 제출 자료 위조를 서슴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대학 입시 비리가 정치권마저 뒤흔들기도 했다.

채 교수는 “이런 양육은 오히려 아이의 학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상담을 하면서 실제 부모의 과도한 학업 개입 하에 있던 학생이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을 당한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고 말했다.

불도저 부모는 친구 관계나 학교생활에도 과도하게 관여한다. 학교 선생님과 민원성 접촉을 일삼는다. 최근 폭로 된 사례처럼 급식부터 자리 배치까지 개입하며, 자녀의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아이가 아닌 자신이 나서서 해결한다.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양육 방식이 아이들을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스트레스 관리, 실패 대처, 그리고 의사 결정과 같이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이 없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임상심리학자 매들린 레빈(Madeline Levine)은 앞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부모들은 아이의 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치워버린다”면서 “소위 명문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기술마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기숙사에 쥐가 나온다거나, 룸메이트가 마음에 안들거나, 과제가 지나치게 많다는 등과 같이 사소한 이유로도 아이들은 좌절하는 것이다.

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 안산점에서 아동·청소년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고보선 놀이치료사는 “이른바 과잉양육적 태도를 가지신 부모들은 자녀의 생활을 파악하기 위해 감시하거나 질문을 하고, 잔소리와 지시를 자주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해결을 해주고, 미리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까지 마련한다”면서 “반면 ‘공공장소에서 뛰지 않기’와 같이 꼭 제한해야 할 것을 제한하지 않고 허용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분고분하다 극단적 반항… “부모가 심리적 종이 되기도”

부모가 아이의 인생을 끌고 가는 경우,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은 부모를 위한 것이라는 왜곡된 생각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채 교수는 “과잉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이 부모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부모에게 화가 나면 자신의 숙제를 안 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행동을 하며 부모를 역으로 통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아이는 공부나 학교생활에 대한 주인 의식이 없으며, 부모를 마치 자신의 종을 부리듯이 한다”면서 “극단적 경우에는 자신의 요구를 안들어 주는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녀도 있었다”고 말했다.

과잉양육으로 길러진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는 별 문제 없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다가 성장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일선 학교에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맡고 있기도 한 고 치료사는 “과잉육아 속에서 키워진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여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진짜’ 자신감을 쌓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정해진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결과에 집착하며,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하나 하나 물어보거나 확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시절에는 의존적이고 순종적인 형태를 띄다가 사춘기나 대학생 정도가 되면 부모에게 갑자기 반항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윤은숙 기자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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