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은 암환자들, “진료실에선 이렇게 말해보세요”

[조주희 암&앎]⑫ 환자의 자기평가 결과를 중심으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메멘토’의 대사였던가,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말. 기억에는 늘 한계가 따른다. 똑같은 상황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고 그 해석이 달라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암 치료 중 겪는 부작용은 어떨까?

환자 A씨는 항암주사를 맞고 힘들지 않았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응당 그렇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았다고 답한다. 하지만 실제 그의 기록을 보면 체중이 이전보다 2kg 정도 줄었고, 감염 수치도 현저히 낮았다. 차트를 보고 의사가 되물으면 환자는 그제서야 기억이 난 듯 곤혹스러운 얼굴로 “사흘간 입안이 헐고 설사 때문에 고생을 했어요. 일주일은 밥도 먹지 못했습니다”라고 어렵게 말한다. 또 어떤 때엔 보호자와 환자가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환자가 이번 치료 뒤 몸이 아파 고생했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보호자는 난색을 드러내며 “옆에서 볼 때는 괜찮던데 왜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며 서로 간 기억의 차이로 오해를 쌓기도 한다.

그렇다면, 암환자가 치료 중 자신의 부작용과 경험을 제대로 기억하고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일까? 최근 병원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시스템 전체에서 환자가 보고하는 증상 및 기능, 건강으로 인한 삶의 질,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등 환자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의학적인 검사나 의료진의 관찰로 평가하기 어려운 신체, 정신적 증상, 질병관련 삶의 질은 의료진이나 제3자가 평가하는 것보다 환자 스스로 보고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치료 결과를 예측해준다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이라는 유명 학술지에는 암 환자가 치료 중 보고하는 신체∙정신 증상과 기능이 치료 예후, 즉 생존율을 예측해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또 다른 연구로 2016년에는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진행성 폐암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주기적으로 본인의 증상으로 평가하고 보고했을 때,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더 오래 살고 삶의 질도 좋았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미국의학회지(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에 발표됐다.

암 치료 중 항암치료는 대부분 2~3주 간격으로 진행된다. 방사선 치료 시에는 매일 병원을 방문하지만 담당의와 면담은 주 1회 정도뿐이다. 치료 기간도 적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 훌쩍 넘을 때가 많다. 안타깝게도 환자가 겪는 부작용은 치료를 마치고 집에 귀가한 다음날부터 1주일까지가 가장 많다. 환자가 다음 번 병원을 방문할 때면 기억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게 부작용을 겪고도 외래에서는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긴다.

그렇다면, 환자가 보고하는 자기 경험은 왜 중요한 것일까?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위의 경우처럼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환자의 경험으로 치료의 질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치료란 단순히 생존율만 높이는 것이 아니다. 치료 효과는 아무리 좋아도,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며 삶을 고통으로 만들 정도로 힘들다면 가치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환자가 실제 병원 밖 일상생활 중에 치료로 어떤 증상과 변화를 경험했는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은 다음 치료 결정을 위해서, 또 치료로 인한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환자가 말하는 것은 너무 주관적일 수 있어 염려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유럽을 비롯해 국내 의료계와 연구진들은 환자의 경험, 즉 증상과 기능, 삶의 질, 만족도를 환자 치료 성과로 객관적이고 의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자 설문의 측정도구를 개발하고 정량화하고, 수치화 할 수 있도록 타당성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이러한 평가 지표를 ‘환자자기평가결과(Patient-reported outcomes, PRO)’ 이것을 측정하는 도구를 ‘환자자기평가도구(Patient-reported outcome measurement, PROM)’라고 일컫는다.

특히 암치료 중 ‘환자자기평가결과’를 측정하는 것은 다음의 3가지 이유로 더 중요하다.

첫째, 건강지표 중에는 암환자만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증상이나 치료 효과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통증, 피로 또는 우울 등은 외부에서 관찰할 수 없는 주관적 증상이다. 특히 통증과 피로는 환자가 평가해 보고하는 것이 표준 검사방법이다. 의료진 또는 제3자가 평가하면 이를 과소 또는 과대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확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둘째, 최근 표적치료, 면역치료 등 새로운 암치료법의 효과는 환자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유사한 치료와 생존율을 비롯한 치료 효과가 비슷하면 새로운 치료가 기존 치료보다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증상이나 기능에 영향을 주거나 오래 경험하지는 않는지, 일상생활이 더 편하고 삶의 질이 좋아졌는지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의 경험과 자기평가결과가 또다른 성과지표가 될 수 있다.

셋째, 환자자기평가결과의 측정은 의료진과 환자 간의 비형식적인 의사소통을 더 형식적이고, 유용하게 함으로써 환자가 본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의료진에게 과학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필자는 종종 진료를 볼 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환자를 만난다. 그때는 환자가 힘들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일기장이나 수첩에 기록하도록 권한다. 이 기록지를 의사에게 미리 제공해 효율적으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진료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치료 중 경험한 부작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언제, 얼마나, 어떻게 경험했는지 바로바로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록들과 함께 떠오른 생각들로 자신을 정리하면 부작용을 잘 이겨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두렵고 희미하기만 했던 암치료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다음은 필자의 연구팀이 식품의약안전처와 개발한 일반인 대상 <환자자기평가결과>에 대한 리플릿의 내용 중 암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1. 환자자기평가결과란 무엇인가요?
▶ 나의 건강 상태를 의사, 간호사, 가족 또는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평가하여 보고한 결과를 의미합니다.
▶ 나의 신체적•정신적 증상, 기능, 삶의 질 등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의료진에게 전달해주는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2. 환자자기평가결과는 무엇을 평가하나요?
▶ 나의 건강 상태 파악에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증상, 기능, 삶의 질 등에 대한 정보를 평가합니다.
➊ 증상 : 속쓰림, 통증, 우울, 수면장애 등
예시) “지난 일주일 동안 통증이 가장 심할 때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➋ 기능 : 계단 오르기, 집안일, 여가활동 등
예시) “무거운 쇼핑 백이나 가방을 옮길 때처럼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곤란을 느끼십니까?”
➌ 삶의 질 : 활력, 건강 상태, 일상 및 직장생활의 어려움 등
예시) “당신은 일상 생활을 위한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까?”

3. 환자자기평가결과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 환자자기평가결과는 과학적으로 개발되고 검증된 환자자기평가도구(평가 설문지)를 사용하여 평가합니다.
① 병원 또는 가정에서 종이설문지, 전자기기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이용하여 작성합니다.
② 작성된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미리 파악합니다.
③ 진료 시 담당 의료진과 함께 치료 계획 및 치료 효과에 대해 상의합니다.

5. 환자자기평가결과를 작성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해야 합니다.
가족, 의료진 및 다른 사람이 작성할 경우 본인의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 회상 기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평가지(설문지)에 제시된 회상 기간(예: 지난 일주일 동안, 현재 등)을 반드시 확인하고 작성해 주세요.

▶ 나의 건강 상태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회상 기간 중에 본인이 경험한 증상, 기능 상태, 삶의 질 등의 건강 상태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 작성해 주세요.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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