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 사용, 꼭 그렇게 막아야 할까

 

오랜만에 만난 친척어른들의 공통된 질문 중 하나. “부모님 건강은 요즘 어떠신가?” 자식들이 내놓는 답은 으레 이렇다. “늘 그렇죠.” 부모가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과 늘 안 아픈 곳 없는 부모에 대한 걱정은 대개 이렇게 뭉뚱그려져 표현되기 일쑤다. 암처럼 도드라진 큰 병이 없다면 알 수 없이 삭신이 쑤시는 노년의 아픔은 늘 그런 일상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건설업체에서 현장감독으로 일하다 은퇴한 60대 김모씨는 10년 전에 넘어져 허리를 삐끗한 뒤부터 통증을 달고 살았다. 말 그대로 삭신이 쑤셔 물리치료와 침술에 기대고 있지만 일시적인 효과뿐, 통증은 떨어질 기미조차 없다. 몸에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을 찾았지만, 나이 들어 생긴 가벼운 관절염 외에는 이상도 없다. 김씨에게 통증은 늘 그렇지만 별 것 아닌 일상의 일부일까.

성인 5명 중 1명 만성통증… 감별진단 부실

진료를 받아도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통증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대한통증학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성인 5명 중 1명은 만성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만큼 통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급성요통 환자의 7%는 만성통증으로 발전하고, 이러한 만성통증 환자들이 쓰는 의료비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신헌규 강북삼성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만성통증 치료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부담”이라며 “수술 후 재입원에서 통증은 가장 흔한 원인”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 말초 및 중추신경계에 통증신호가 반복되면 신경계도 여기에 반응해 리모델링된다. 변형된 신경계가 통증에 과민해지면서 삭신이 늘 쑤신 만성통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만성통증은 임상적으로 복잡하다. 단순한 급성통증의 연장이라 할 수 없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신경외과 존 뢰저 교수는 “급성통증과 만성통증은 ‘통증’이라는 단어만 공유한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만성통증 환자에 대한 관리는 부실하다. 통증 전문 제약사인 먼디파마가 한국과 중국, 홍콩 등 아시아 10개국에서 의사 1158명과 환자 24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ACHEON)를 보면 암이 아닌 만성통증환자의 65%가 제대로 된 통증 진단을 못 받고 있다. 왜 아픈지 정확히 찾는 감별진단보다 아프면 수술할지 말지만 따져서 문제라는 의견도 의료계 내에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대한통증학회가 지난해 말부터 통증치료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약물치료에 대한 만성통증 환자들의 불만족도 적지 않다. 국내외 연구를 살펴보면 만성통증 환자의 64%는 진통제로 통증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만성통증 환자의 40%, 국내의 경우 중등도 요통 환자의 30% 정도가 현재 약물치료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상당수 약물치료 불만족… 마약성 진통제 사용엔 주저

약물치료에 실패하면 늘 그런 일상은 악몽이 된다. 평균 12시간 이상 지속되는 기저통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극심한 돌발통증이 유발돼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돌발통증이 낮에 생기면 일상적인 활동에 장애가 오고, 밤에 생기면 수면장애를 겪게 된다. 기저통증을 관리하기 위해 약효 지속시간이 긴 서방형 진통제를 써도 다음 약물을 투여하기 전에 혈중 약물농도가 떨어져 돌발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상에서는 오남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마약성 진통제의 과감한 사용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 의과대학과 통증학회의 공동 임상 가이드라인(2007년)에서는 4주 이내 급성통증과 4주 이상 아급성 통증, 만성통증 모두 트라마돌 등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오인수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마약성이 약한 부프레노르핀과 트라마돌 등은 과감하게 임상에서 써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다. 환자들이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다보니 마약성 진통제가 국내에서 적정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방한한 세계적 통증교육 전문가인 미국 숄스 병원의 베리 콜 박사는 “마약성 진통제의 적정한 사용을 나타내는 ACM(Adequate Consumption of Medication) 통계치가 있는데, 가장 이상적인 ACM 수치가 100%라면 한국은 절반 수준”이라며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필요한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주는 데 의사들이 주저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통증이 질병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여러 암 관련 연구에서도 통증치료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베리콜 박사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의대에서도 통증교육이 활성화돼 있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 의료인과 환자에 대한 통증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민철 기자 mcbae2000@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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