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대표 자살로 보는 술-자살 관계

경제위기 불안감 술로 달래면 위험

또 유서와 술병이 함께 발견됐다. 자신에게 돈을 맡긴 20여명의 투자자에게 죽음으로써

빚을 갚겠다는 편지만 남긴 채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사설 투자 자문사 새빛에셋 대표 최성국(55) 씨의 곁에는 양주와 수면제

등이 함께 발견됐다.

최 씨는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데에도 적극적이어서 2000년 이후부터 모교인

인하대에 12억여원을 기부했고, 119구조대 유자녀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하는 등 선행업적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날 발견된 편지의 내용에 따라 경찰은 최 씨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의

원금조차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몇 달째 계속되는 금융위기로 인한 불안감, 우울증을 술로 이겨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술은 감정폭발의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안재환, 최진실, 장채원 등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현장에서 술병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2003년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도 술을 마시고 극단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가 계속 심화되고 있는 만큼 지금도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라며 “잠재된 자살충동을 늘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임두성 의원(한나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불안장애 진료인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4년 37만4천여 명이던 불안장애

환자가 작년 50만 명을 넘은 데 이어 올해 8월 현재까지만 33만6096명에 달해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4년 새 불안장애 환자가 34.1%나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불안장애가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술 담배 등에 의존함으로써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알코올 판매 증가하면 자살률도 함께 상승

전문가들은 “우울증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뇌 기능이 떨어져 자제력이 약해지고

슬퍼지거나 흥분돼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고 있다면 다른 우울증 극복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자살한 사람의 20~30%가 자살 전에 술을 마셨거나 알코올 남용에 빠졌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의 그루엔 월드 박사는 1970~80년 알코올 판매량이 높으면

자살률이 높아지는 연관 관계를 발견했고, 알코올 판매량이 10% 증가하면 자살률이

1.4%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지정 다사랑병원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한 여성 환자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환자의 30%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평소 우울 증세를 겪고 있고 습관적으로 술을 마셨다.

다사랑광주병원 황인복 원장은 “술은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을 증폭시켜 자살까지

이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며 “술을 마신 뒤 차도로 뛰어들어 봤다는

사람, 손목을 그어 자해했다는 사람, 죽으러 물속에 들어가 봤다는 사람 등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원장은 “알코올은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뇌 전두엽의 기능을

통제하고, 충동성을 억제하는 가장자리계(변연계)에 영향을 미쳐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코올 의존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증 환자다. 일단 우울증에 빠지게

되면 뇌 이마엽(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알코올은 뇌기능 억제제 역할을 함으로써

이마엽의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술을 자살충동 막는 억제력을 무너뜨린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 알코올까지 들어가면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살로

이어지는 충동의 연쇄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강웅구 교수는 “술은 자살 뿐 아니라, 폭력 등 다른 중범죄를

키우는 증폭제”라며 “술은 자제력을 잃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자살에 이르기까지는 복합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술

= 자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술이 자살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중앙대병원 정신과 백형태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자살 충동을 의식적으로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술 기운은 이러한 자제력을 부수는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신경정신과 엘 쉬어 박사는 2006년 ‘국제의과학 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Medicine)’ 11월호에 발표한 ‘술과 자살과의 관계’ 논문에서 평소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가 적어져 감정이

더 가라앉고 충동적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에 몰린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며

“처지를 비난하고 죽음을 말한다거나 이유 없이 울거나 갑자기 침착해지는 등 자살

징후를 보이는 사람에 대해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은지 기자 jej@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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