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이면 갈등… “이것도 병일까”

《“매년 명절에 아들이랑 언쟁을 벌이고 있어. 서울 사는 둘째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나를 무시하는걸까? 아들이 왔는데 입 다물고 있을 수도 없고….”(김모씨·63·경남 합천군 합천읍)“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지만, 내심 시댁 가는 것은 싫어요. 회사에서는 최상의 평가를 받는데 시댁에서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늘 바늘방석이죠. 시어머니도 일 시키는 것을 포기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편해요. 속이 보이지만 이번에도 당직 탓하며 내려가지 말까 해요.”(A제약사 박모 차장·41)

“귀성길에 오를 때엔 늘 ‘이번에는 부모님에게 잘 해 드려야지’ 하고 곱씹으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무엇인가 치밀어 올라와요. 어머니가 아내에게 아들타령하는 것 듣는 것도 끔찍합니다. 고향 가는 것이 즐겁지 만은 않습니다.”(S기업 손모 과장·34)》

▼인간관계 마찰 부르는 ‘인격장애’▼

명절은 떨어진 가족이 모처럼 만나 웃음꽃을 피우는 소중한 날이지만, 이 날이 두려운 사람도 있다. 가족이나 친척끼리 만나기만 하면 언쟁(言爭)을 벌이고 가슴 속에 짐을 지운 채 헤어지곤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원인이 명확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대부분의 사람이 ‘명절 때 가족 갈등’이라면 고부(姑婦) 갈등을 꼽지만 가족 간 갈등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대부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성격 유형, 무의식, 문화 배경 등이 가족 내 갈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갈등의 실체를 알면 가족 관계를 보다 더 가깝고 편안하게 만들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인격유형과 인격장애〓왜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무던히 지내지만 어떤 사람은 갈등을 일으킬까?

주원인은 사람마다 인격의 경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격 경향은 성격의 여러 가지 측면 중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것이다. 정도가 심해 사회, 직장, 학교 등에서 남의 생활에 불편을 주면 인격장애. 이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의 인격 경향이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격장애가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이 경우 자신과 상대방의 인격 경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갈등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인격〓요즘 자녀 중에는 △자기애적 인격 △경계선 인격 △의존적 인격 등의 경향 또는 장애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애적 인격 경향’이 있으면 자신에 대한 사소한 비난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경계선 인격’은 남이나 자신에 대한 평가, 기분 등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으로 특히 여성은 남에 대해 편을 나누고 갈등을 조장하곤 한다.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면서 동서를 욕하거나 시부모가 가족 중 누군가를 욕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 해당된다.

의존적 인격 경향이 있는 아들은 부모에게 의존해 있다가 결혼 뒤에는 아내에게 의존한다. 명절 때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경우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부모의 독특한 인격 유형도 명절 때 충돌의 원인이 된다.

시어머니 중 일부는 수동 공격형 경향을 띠는데 이는 40대 이후 심리적으로 독립되면서 나타난다.

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다. 의학계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 고개는 바짝 숙이고 다리로는 페달을 힘차게 밟는 것에 비유해서 ‘자전거로 언덕오르는 유형’(Up-Hill Bike)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유형의 성격은 마음 약한 남편에게 독살스럽게 굴고 모처럼 만난 자식들도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 가족 갈등을 일으킨다.

시부모 중에는 강박 유형을 가진 사람도 많은데 차례상 준비부터 상차리기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하거나 관리해야 편하다. 며느리들을 고생시키지 않아 좋을 듯하지만 당사자들은 심한 불편감을 느낀다.

▽가족 간의 충돌〓자기애적 인격인 며느리와 수동 공격형 인격인 시어머니는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그런데 아들이 의존적이라면 해결이 어렵다.

이처럼 인격이 충돌할 때에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격 유형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만 해도 갈등이 크게 줄어든다.

자녀는 특히 부모의 심리적, 생리적 변화도 이해해야 한다.

부모는 살아온 시간보다 살 시간이 적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사라지고 완고해진다.

부모는 40대 이후부터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어 공격성이 감소한다. 그러나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를 떠나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대부분 자녀들은 어릴 적 ‘강한 부모’만 기억한다. 이 때문에 부모가 좋은 뜻으로 하는 ‘덕담’도 고깝게 여기곤 한다.

자녀는 아무리 부모를 이해하려고 해도 뜻대로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무의식을 알면 설명이 가능하다.

무의식은 뇌가 의식의 영역에 남겨 놓으면 살아가는데 불편한 마음의 여러 요소들을 억압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데 부모에 의해 자극받으면 억압받았던 것들이 변형돼 의식의 세계로 올라와서 마음이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절 때에 온 가족이 두루 모인 장소는 경험을 공유한 여러 사람의 무의식이 함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사소한 말에도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생활 속에서 무의식을 조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마음의 주요한 요소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요즘 정신과에서는 상담, 약물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통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인격장애 체크리스트

A:자기애성 인격

①자신의 성취 능력 등을 과대하게 여긴다.

②성공, 권력, 미, 이상적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한다.

③자신의 문제는 특별해서 특별히 높은 지위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④과도한 칭찬을 요구한다.

⑤자신이 특별한 자격이 있어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하고 남들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기대에 순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⑥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⑦다른 사람의 느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⑧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믿는다.

⑨남들이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얘기한다.

 

B:경계선 인격

①버림받는다는 생각 또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한다.

②남을 극단적으로 이상화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을 반복한다.

③자신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이 불안정하다.

④부주위한 운전이나 과소비 도둑질 과식 등 자신에게 해로운 버릇이 2개 이상 있다.

⑤자살 시도나 제스처 위협, 자해행동을 한다.

⑥수시로 공허한 느낌이 든다.

⑦기분이 들떴다가 가라앉는 등 불안정해지고 불안하다.

⑧자주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해 불편하다.

⑨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심한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C:의존적 인격

①타인의 과도한 충고 없이는 일상의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②자신의 생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타인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③지지와 칭찬을 잃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 의견이 달라도 표현하기 어렵다.

④자신감이 없어 계획을 시작하기 어렵거나 스스로 일을 하기가 힘들다.

⑤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타인의 돌봄과 지지를 원해서 기꺼이 하곤 한다.

⑥혼자서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심한 공포 때문에 불편함과 절망감을 느낀다.

⑦누군가와의 친밀한 관계가 끝나면 자신을 돌봐주고 지지해 줄 다른 사람을 시급히 찾는다.

⑧혼자 남는 것에 대한 공포에 비현실적으로 집착한다.

 

A, B, C 모두 5개 이상이면 인격장애, 2∼4개이면 인격경향일 가능성이 큼.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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