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계속 가족이 도맡아야 하나?

[허윤정의 의료세상] 고령화경제와 간병

“언젠가 당신이 환자를 대하듯 똑같이 한번 당해 봐요. 반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말이요.”

2012년 제6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무르’의 주연 조르주가 아내 안느를 거칠게 돌보던 두 번째 간병인을 해고하면서 한 말이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등 9개의 상을 휩쓸며 높은 작품성으로 평가받은 영화였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족, 치매, 존엄한 삶, 돌봄 등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다. 치매 인구가 급증하는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다.

영화  ‘아무르’에서 주인공 조르주가 아내 안느를 간병하는 장면.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계속 기록을 갈아치우며 고공행진 중이다. 2025년 고령인구는 1051만 명으로 전 인구의 20% 수준에 이른다. 5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작년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는 86조 1,110억 원이었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35조 7,925억 원으로 41.6%를 차지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 진입이 예정되어 있어 앞으로 노인 의료비 증가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사회적 비용 증가와 세대 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은 기대수명이 82.7세였던 2018년 세계 장수국 10위 이내에 진입했다. 장수하는 한국은 치매환자 등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인구도 증가할 것이다. 2018년 75만 명이었던 치매 환자는 2024년에 1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20년부터 9년간 치매 극복을 위한 연구개발사업에 1,987억 원을 투자하여 치매 원인규명 등 연구 개발을 통한 핵심기술 확보로 연간 4.8%에 이르는 치매 환자 증가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활동을 추진 중이지만, 단기간에 치매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 및 치매 환자의 증가 등 돌봄서비스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간병의 75%는 사적 간병에 의존하고 있다. 가족이 간병을 하거나 간병인을 고용하게 되는데 간병비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질은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2020년 병상을 기준으로 22.3%만 시행하고 있어 전체 입원 환자의 10.4%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간호인력 부족으로 서비스의 급속한 확대는 단기간에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또 현재 급성기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 간호와 간병서비스로 운영되고 있어, 요양병원 입원 환자를 비롯한 회복기와 만성기 환자의 간병 부담은 여전히 가족의 몫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진료비의 부담은 줄었지만 가족 중에 환자가 생기면, 한 달에 70만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간병비 부담을 떠안게 된다. 결국 가족 중에 누군가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간병으로 나서게 되면 가족의 생계가 위협당하는 악순환의 구조다. 급성기 병상에 장기 입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요양병원은 간호·간병서비스에서 제외돼, 노인 환자를 부양하고 있는 가족들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요양병원협회가 전국 158개 요양병원 간병인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요양병원 간병인 중 88%가 50대 이상 여성이고, 이 중 중국 동포가 35%를 차지한다. 전체 간병인 중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은 55.4%에 불과하며, 대부분 공동간병 형태로 운영되는 요양병원에서 간병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간병실직·간병살인 등 간병 부담으로 인한 가족 갈등의 대안으로 민간보험시장에서는 간병보험이 공격적 마케팅으로 급성장 중이다. 간병인을 고용하면 월 평균 280만 원 정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중에 환자가 생기면 대부분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 대응을 위해 종합간병 상품까지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돌봄노동 수요에 대응하는 인력 공급이 절실하다. 그러나 간호 인력을 비롯한 돌봄노동 인력의 부족과 공백 그리고 불일치는 오랫동안 미루어둔 과제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간호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처우개선이 우선이라는 견해 차이로 간호인력 증원은 필요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 업무 영역도 미해결의 중장기 과제가 되었다.

전반적인 인구감소 추이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 급증으로 전체 세대수는 증가했다. 1인 가구 세대가 전체 39.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국내 10가구 중 4가구는 1인 가구가 된 것이다. 이러한 가족 구조와 세대 변화는 필연적으로 돌봄이 더 이상 개별 가구가 담당할 수 없는 사회서비스의 역할이 되어야 하는 근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간병은 누구의 몫이며, 앞으로 간병은 누가 감당해야 할 일인가?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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