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67호 (2021-04-05일자)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 말 들어보셨지요? 1588년 오늘(4월5일) 태어난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경구이지요. 홉스는 사람은 자연 상태에서는 제각각 살아남기 위해 서로서로 싸움을 벌이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자연법적 계약을 맺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홉스는 이 계약을 강제로 지키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고, 국가는 계약을 어기는 존재를 무자비하게 처벌해서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도록 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는 국가가 《성경》에 나오는 누구도 감히 맞설 엄두조차 못하는 수중 괴물 ‘리바이어던’처럼 돼야 한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담은 책 이름을 《리바이어던》으로 지었지요.

홉스는 생존욕구가 생명의 근원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허구라고 여겼습니다. 개인이 모인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는데,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은 어떻게 통제해서 평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요?

요즘 뉴스를 보면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이지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국부는 커지는데 왜 사람은 더 원초적으로 회귀할까요? 예전에는 보도되지 않으며 벌어지던 일들이 지금 언론들이 앞 다퉈 보도할 따름이라고 위안 삼을 수만은 없는 듯합니다, 옛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으니….

개인의 생존과 평화를 지켜야할 국가 정부가 스스로 쪼개져 투쟁의 대상으로 격하했기 때문일까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갈수록 힘을 얻기 때문일까요? 이 때문에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 속의 티를 보며 비난하는 경향이 마치 감염병처럼 자연스럽게 번져서일까요? 아니면 강력한 권위의 ‘리바이어던’이 없어서인가요?

어쩌면 홉스의 가정이 잘못 된 것은 아닐까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예방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모성애와 같은 사람의 따뜻한 본성이라고 하면 너무 이상적 이야기일까요? 요즘 세상이 메마르고 잔인해지는 것은 아무도 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이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조건 없는 사랑이 시나브로 사라지는 시대, 사랑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시인 김수영의 절창도 결국 실패한 예언이 돼 버리는 걸까요?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 인류의 종언의 날에 /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 배울 거다 /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 의심할 거다! / 복사씨와 살구씨가 / 한번은 이렇게 /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 중


오늘의 음악

 

1908년 오늘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35년 동안 이끌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연주하는 명곡 두 곡 준비했습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 중 4악장과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전곡 이어집니다.

  • 신세계 4악장 – 카라얀 [듣기]
  • 베토벤 교향곡 5번 – 카라얀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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