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때 X레이… ‘이 병’ 확진되면 “입학보류”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⑨‘국민병’ 결핵과의 분투

1960년대엔 ‘국민병’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BCG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지금은 60대가 된 어린이들이 남녀로 나눠 웃통을 통째로 벗고 주사를 맞고 있다. [자료출처 서울사진 아카이브. 동아일보 자료사진]

1950년대 초 의료진은 6.25 전쟁으로 피난민의 응급처치와 전상자 치료에 급급했다.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말라리아 등 각종 급성전염병이 만연했지만 이를 담당할 인력, 시설, 재원도 매우 부족했다.

결핵은 전시와 이후에도 국민의 골칫거리였다. 같이 학교를 다니다가 결핵에 감염돼 휴학하여 졸업이 늦어지는 사례가 흔했다. 대학 입학시험 때 흉부 X선 촬영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결핵으로 판독되면 입학이 보류돼, 이듬해에 다시 X선 촬영을 하여 완치돼야 입학을 할 수 있었다.

휴전이 되자 1953년 11월 문창모 박사를 중심으로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됐고, 초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문창모 박사(1907~2002)는 평안북도 선천 출신으로, 1931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황해도 해주에 셔우드 홀(Sherwood Hall) 의료선교사가 설립한 해주구세병원에서 근무했는데. 1932년 홀 선교사가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어 판매할 때 모금담당자로 활약했다. 문 박사는 1953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실을 제작, 모금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문창모 박사는 1992년 86세에 통일국민당 전국구 1번으로 제14대 국회의원이 됐는데 역대 최고령이다.

전쟁과 피난 등으로 결핵은 급속히 확산해서 1952년 남한의 결핵환자는 120만 명에 이르렀다. 광복 전 통계가 한반도 전체이므로 북한을 제외하고 보면 6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전쟁 직후인 1954년 서울시내 고교생을 검진했더니 보균자가 6.63%였으며 중환자만 50만 명이었다. 한 해 10만여 명이 결핵으로 숨져 하루 300명 정도가 결핵으로 숨지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1962년 전국의 결핵환자는 80만 명이고 4만~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국에 비자 신청을 하려면 미국대사관 지정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흉부 X선 필름을 지참하고 입국 심사를 받을 때 제출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1957년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청량리 서울위생병원(현 서울삼육병원), 그리고 부산위생병원 등 네 병원을 미국비자 검진센터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 서울대병원은 병원 직원이 폐결핵 환자의 필름을 바꿔치기 한 것이 알려졌기에 지정이 취소됐다.

대한결핵협회가 보건사회부, 세계보건기구, 유엔아동기금(UNCEF)과 공동으로 1965년에 제1차 전국결핵실태조사를 하였는데, 결핵 유병률이 5.1%였다. 그 후 5년마다 결핵실태조사를 하였는데, 제2차 4.2%, 제3차 3.0%, 제4차 2.5%, 제5차 2.2%, 제6차 1.8%, 그리고 제7차(1995) 1.03% 였다. 이 결핵실태조사는 우리나라 결핵관리사업의 지표와 방향을 설정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일본강점기에도 조선인의 결핵은 만연했다. 아홉 살에 미국으로 가서 미시건대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라초이식품회사를 창립하여 성공한 유일한 박사는 귀국하여 한반도에 유한양행을 1926년에 창립할 때 “조선인의 절대 다수가 기생충에 감염돼 있으며 ‘국민병’이라고 볼 수 있는 결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업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1930년대 후반 국내 결핵 환자는 대략 40만 명이었고, 해마다 4만 명 정도가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다.

1960~70년대에는 학교에서 크리스마스실을 ‘반강제’로 판매하는 것이 흔하였다. 크리스마스실은 앞서 언급한 대로 1932년 셔우드 홀이 도입했고, 1949년 문창모 박사가 주관하여 한국복십자회, 1952년 한국기독의사회 등이 발행했지만 1953년 창설된 대한결핵협회에 의해 구매가 활성화됐다.

TV에서는 1960년 영화배우 최은희가 “크리스마스실을 삽시다”는 홍보 광고를 했고 엄앵란, 김지미, 김자옥, 한혜숙, 사미자 등 최고의 배우 및 탤런트가 실 판매 및 결핵예방 홍보 광고 행렬에 동참했다. 1963년 전국극장연합회의 주관으로 결핵 퇴치 특별 모금운동이 펼쳐져 극장 입장료에 실 요금이 추가됐고 1964년에는 고궁 입장료에 포함됐다.

결핵 예방의 선구자로서는 연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로 30년간 근무한 김기호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김 교수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2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서울여자의대 내과에서 근무하다가, 도미하여 결핵을 중점적으로 연수하고 1955년에 귀국했다. 김 교수는 대한체육회 선수강화위원, 스포츠과학위원회 위원장 등 운동선수들의 체력관리와 주요 국제경기에서 의료자문 역할도 하였다.

BCG 백신은 결핵 발병률을 줄이는 일등공신이었다. 1962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에 따라 보건소를 중심으로 생후 4주 이내의 영아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했고, 1965년에는 서울시 초등학교 어린이 15만 명에게 예방접종을 했다. 백신 생산은 결핵 퇴치를 위한 기간사업 중의 하나였다. 1955년부터 개발에 착수해서 1963년 국산 BCG에 대한 국제 규격 적합 통보를 받았다. 1966년에 대한결핵협회와 국립보건원이 협정을 체결하고, 국립보건원이 제조를 맡아서 1969년에는 30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자체 생산과 보급을 해내기에 이르렀다. 전국의 192개 보건소에서 BCG백신 접종을 하였고,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일하는 결핵요원들이 열심히 활약했다.

결핵 치료제는 유유산업(현 유유제약)과 유한양행이 파스(PAS, Para-amino Salicylic Acid)를 비롯한 결핵약을 제조, 판매했다. 유일한 박사의 기업 설립 정신을 ‘형제 회사’인 두 곳에서 충실히 구현하면서 결핵환자를 치료 하여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WHO 자료(2017년)에 의하면 OECD국 결핵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평균 11.1명인데, 우리나라는 70명으로 OECD 국가 중 결핵유병률이 제1위이다. OECD 평균의 7배에 이를 정도인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범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결핵을 퇴치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결핵 후진국’이란 멍에를 쓰고 있기에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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