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면 사망 30주기…”오늘도 또 죽었다”

#1. 2017년 8월, 집배원 A씨는 근무 중 교통사고로 집배 업무의 생명인 왼쪽 허벅지를 다쳤다. 상부는 “공무 중 재해 처리는 하지 말라”, “곧 명절 특근이 시작되니 조금만 쉬고 나오라”면서 A씨가 병원에 입원한 2주간 끊임없이 출근을 재촉했다. 채 낫지 않은 다리로 집배를 이어가던 A씨는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니 두렵다”, “사람 취급 안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2. 2017년 11월, 고등학생 B군은 모 음료 공장에 현장 실습을 나가 전공과 관련 없는 포장, 지게차 이동 업무를 맡았다. 관리 감독자, 안전 장치가 부재한 공장에서 B군은 미끄러져 핸드폰이 파손되거나 갈비뼈가 심하게 부딪혀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를 당했다. 갈비뼈 부상으로 요양 중이던 B군은 관리자의 요청으로 공장에 복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B군은 포장 기계에 몸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경추, 흉골, 폐가 모두 망가졌고, 끝내 심정지로 사망했다.

1988년 작업 중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군 사건 이후 산업 재해 해결을 위한 운동이 이뤄졌다. 3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문송면-원진레이온 노동자 산재 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는 지난 17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산업 재해 피해자 증언 대회 및 노동 안전 보건 과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행사 1부에는 산업 재해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사실 증언 대회가, 2부에는 화학 물질 산재 피해자 문송면 군-원진레이온 노동자 사망 30주기를 기해 산업 재해를 둘러싼 그간의 변화와 앞으로의 과제를 토의했다.

증언 대회에 참석한 피해 당사자 및 유가족은 화학 물질 중독, 과로사, 기계 조작 사고 등으로 인한 피해 사실과 산재 인정 투쟁 과정을 말했다. 증언자들은 “한국 사회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업은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하며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결코 피해자의 편에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문송면으로 비롯된 변화들, 그리고 더 변화해야 할 것들’을 주제로 2부 주제 발표를 맡았다. 백 교수는 “일부 사례 보고 형태로 존재했던 직업병이 1988년 이후 소음성 난청, 근골격계 질환 등 일부 질환에서 질환과 직업간 연관성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백도명 교수는 “여전히 산업안전보건법의 주체는 ‘남성, 제조업, 대기업, 노조 등 조직화된 노동자’에 맞춰 있다”며 “사고로 인한 근골격계의 물리적 손상 외에 작업장 노동이 정신 질환, 생식 질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대기업이 아닌 작은 작업장에서는 왜 질병보다 사고 보고가 많이 이뤄지는지 등 해결되지 못한 산재 문제가 많다”고 했다.

백도명 교수는 “그간 기업 또는 국가가 산재 피해를 인정한 주된 맥락은 경제적 타협이었다”며 “‘당신의 피해 사실을 인정해 이 정도의 금전적 보상을 주겠다’는 시혜적 구조로 인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예방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백도명 교수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단순히 ‘인정 투쟁을 거쳐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라며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피해 보상 외에 다양한 후속 조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백 교수는 가능한 선택지로 역학 조사 요구, 명예 안전 감독관 참여 등을 제안했다.

백도명 교수는 “직업병은 특이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특이한 질병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비특이적 질병”이라며 “산재 장면에서 불거지는 복지, 인권, 환경의 문제는 사업장 안팎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개개인이 오랜 노동을 위해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노동 자체가 건강한 노동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고은 일터 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운영위원장은 “직업환경의학과는 1988년 두 산재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 전문 과목”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직업환경전문의, 산업관리전문의들은 주로 특수 검진을 통해 노동자 건강을 관리하지만 과연 특수 검진이 직업병을 사전 차단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고은 운영위원장은 “한 번 벗어나면 다시 진입하기 어려운 것이 노동 시장”이라며 “많은 현장 노동자들이 병에 걸린 사실을 숨겨달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노동자, 노동 시장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기업 역시 노동자 건강 문제를 경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oatawa/shutterstock]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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