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국적불명의 단어라는 것 아시나요?

영어의 ‘She’ 번역한 일본어, 우리나라에 전염

She is beautiful.=그(녀)는 아름답다.

He is nice.=그는 멋지다.

‘그’와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는 영어 번역문이나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보통 ‘그’는 남자를 가리킬 때 주로 쓰이지만 남녀 구별 없이 쓰이는 대명사다.

반면 ‘그녀’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다. ‘그녀’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말 전문가들은 고개를 흔든다.  

3인칭 대명사로서 ‘그’는 남녀 구별 없이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이며, ‘그녀’는

은연중 여성을 비하하게 되는 표현이라는 의견이 많다. 10여 년 전에 나온 ‘우리말

우리글 바로알고 쓰기(이수열, 지문사 1994년)’라는 책은 “우리말에는 명사 한자음

위에 관형사 ‘그’를 얹어서 만든 말이 없다”면서 “그 만드는 과정부터 여성을

비하하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녀’는 영어의 ‘쉬(She)’를 번역한 일본말 카노죠(彼女, かのじょ)를 번역한

말이다. 영어와 일본어를 거쳐 순수 국어인 ‘그’와 한자음 ‘녀(女)’가 결합한

형태다. 이러한 조합대로 한다면 남자를 가리킬 때는 ‘그’가 아닌 ‘그남(男)’

이라고 쓰는 것이 옳을 듯싶다. 특히 ‘그녀’에 토씨 ‘는’을 붙여서 소리 내면,

쓰기는 ‘그녀는’이 되지만 ‘그년은’이라는 민망한 소리가 나온다.

영어에 1인칭 지시대명사는 ‘아이(I)’, 2인칭은 ‘유(You)’, 3인칭은 성을

구별해서 ‘히(he)’와 ‘쉬(she)’로 딱딱 나눠진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인칭을

표현하는 말이 풍부하다. 1인칭만 하더라도 ‘나 저 소자 소생 소인,’ 2인칭은 ‘너

자네 그대 당신 임자’ 등이 있다. 3인칭도 그 어른 그분 소년 소녀 사나이 여인

부인 여사 등으로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영어와 일본어가 우리말 자리를 치고 들어오면서 ‘그녀’가 우리 언어,

특히 글 문화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상당수 국어학자들이 ‘그녀의

추방’에 대해 노력해온 결과 몇 년 전부터는 많은 신문사들이 ‘그녀’라는 표현을

가급적 쓰지 않기로 했다.

국립국어원은 ‘그’라는 대명사 홀로 남녀를 공통적으로 지칭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현실 속의 풍경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그’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주로 남자를 가리킬 때 쓴다고 돼 있다. ‘그녀’는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여자를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로 돼 있다.

최근 서울의 한 교사는 국립국어원에 “우리말에 섞여 쓰이고 있는 3인칭대명사

‘그’와 ‘그녀’를 과연 정통 문법에서 인정하는지, 의견이 분분한 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문의했다.

국립국어원의 답변: ‘그’와 ‘그녀’의 쓰임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는

남성대명사, ‘그녀’는 여성대명사와 같은 대립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가리킬 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고 삼인칭 대명사 ‘그’를 쓸 수 있다. 다만 남자를 가리킬 때 ‘그’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그녀’는 사전 뜻풀이에 나오는 대로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말한 여자를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나 우리말 바로세우기를 염원하는 지식인들은 “그녀라고 쓴 문장 어디에든

그를 대체해 넣어보면 하나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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