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환자 “연구목적 알려달라”

국가 주도 에이즈 연구에 감염인 거부 운동

정부

주도로 진행 중인 ‘HIV(에이즈) 코호트 사업’에 에이즈 감염인들이 참여 거부를

선언하고 반대 운동에 들어갔다.

14일 에이즈 감염인 단체인 러브포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5일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감염인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업임에도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환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반대운동을 전개할 뜻을 밝혔다.

러브포원에 소속된 환자 1300여 명을 비롯해 다른 감염인 단체가 이 반대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환자들이 코호트 사업에 불만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정부가 담당하던

환자들의 RNA 정량검사를 이달부터 민간기관으로 넘겼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정부의

코호트 사업에 적극 참여했으나 정부는 환자들에 대한 배려 없이 RNA 정량검사를

민간기관으로 옮겨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HIV 코호트사업이란 질병관리본부가 지역별 대학병원 등을 통해 대규모로 진행하는

‘한국인 유전체역학조사사업’의 하나로 ‘에이즈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20년 동안 진행되는 장기 연구다. 환자들은 이달 초 질병관리본부에 에이즈 코호트

사업의 목적과 배경, 실행과정과 감염인의 동의여부, 현재까지의 결과물, 평가회의

자료 등을 요구했으나 질병관리본부의 답변이 충분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환자들의 요청에 대한 질병관리본부의 답변서에는 이 연구의 목적이 한국인 감염인의

생존기간, 치료효과, 질병진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규명해 감염을 예방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에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돼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결과물과

평가회의 자료는 개인 정보 유출이 우려되고 참여연구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러브포원의 박광서 대표는 “주치의와의 관계에 있어서 환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주치의가 연구 참여를 권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 번 검사를 받을 때마다 3~8개의 혈액 샘플을 뽑는 데 이 중에 몇 개가 코호트

사업에 쓰이는지, 어떤 용도로 언제까지 쓰이는지 환자들은 정확히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에 연구에 대해 설명했더라도 환자가 물으면 언제든지 연구의 경과나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원칙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연구는

환자들이 소외된 채 진행되고 이것을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하면 정부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사업 초기에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한 상황이지만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규정에 따르면 환자가 원치 않을 때는 이유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참여를 중단할 수

있다. 에이즈 코호트 사업은 환자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반대운동이 계속 확산되면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될 우려가 있다.

의료윤리를 전공하는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인문사회의학교실 구영모 교수는

“피험자가 사회적 취약자일 때는 연구에 앞서 이들의 프라이버시와 이익을 더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며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리고 주치의와의 관계를 조심스러워하는

에이즈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번 연구 역시 이러한 점이 고려돼야 했으나 연구

진행자와 피험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취약한 피험자에게는 연구자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IRB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죄수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연구라면 이들의 이익과

생각을 대변하는 죄수의 대표자가 연구자 회의에 반드시 참석하도록 한다. 한국은

아직 이러한 규정이 없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의 주도로 진행되는 에이즈 코호트 사업은

2007년 처음 시작됐으며 전국의 24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에이즈 환자 500명이

참여하고 앞으로 참여 환자를 계속 늘릴 계획이다. 현재는 본 연구가 시작되기 전

준비 단계로 연구의 바탕 자료가 되는 감염인들의 혈액 샘플을 수집, 혈청은행에

저장하고 있다. 예산은 연간 5억원이 소요된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 관계자는 “연구가 각 병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들의 이런 불만은 처음 접했다”면서도 “연구는 질병관리본부와 병원에서

IRB를 모두 통과했기 때문에 연구 윤리에 어긋난 것은 없을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1980년대부터 에이즈 환자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에 비해 한국은 연구 인프라가 부족해 이제야 시작됐다”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결국은 감염인을 위한 정책들이 만들어질 것이므로 환자들과 만나서 이를 설명하고

대화로 오해를 풀어보겠다”고 말했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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