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여성이 일기 쓰는 이유...“치매로 애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요”
[김용의 헬스앤]
“친구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집에서 갇혀 살아요. 이제 60세가 넘은 저도 치매가 걱정됩니다. 우리 애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요.”
62세 여성 A씨는 최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영어회화 책도 다시 보며 문장을 되뇌인다. 모두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A씨와 같은 나이인 친구는 결혼을 미룬 채 평생 어머니(85세)와 살았다. 자영업으로 생활비와 남동생의 학비를 보태기도 했다. 60세가 넘어 일을 그만둘 시점에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자 서둘러 매장을 정리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낯선 사람들 보면 어머니가 기겁을 하기 때문에 요양병원-시설 행은 현재로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좀 편해질 나이에...” 친구를 안쓰럽게 여긴다.
치매 환자 100만 명 시대...50~60대 치매도 많아
우리나라 치매 환자가 지난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중앙치매센터(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발병률은 10.4%(2023년 기준)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까지 포함하면 치매 유사 환자들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는 노인만의 병이 아니다. 최근 50대 치매 환자가 늘고 있다. 65세 이전에 생기는 치매를 ‘조발성 치매’라고 한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발성 치매 환자는 전체 치매의 8%(2021년 기준) 정도다. 환자 수는 2019년 6만 3231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3.6배 늘었다. 50대에 치매가 나타나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다양한 치매의 원인질환...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알코올성 치매 등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질환은 다양하다.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많아 70% 정도를 차지한다.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등이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 인지 기능 저하, 언어-행동 장애를 일으킨다. 2위는 뇌졸중(뇌경색-뇌출혈) 후유증인 혈관성 치매로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뇌의 혈관이 망가지면서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을 예방-관리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을 예방해야 뇌혈관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고열량-고지방-고탄수화물 음식, 흡연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게 좋다. 과음으로 인해 생기는 알코올성 치매도 술을 끊으면 예방이 가능하다.
치매는 왜 여성이 많을까?
치매 환자는 여성이 더 많다. 한국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여성 62%, 남성 38%다. 미국도 61%대 39%로 비슷하다. 왜 여성이 많을까? 평균적으로 여성이 더 오래 살기 때문에 뇌의 노화로 인한 치매 위험이 높다. 미국 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65~74세 1000명당 치매 환자는 4명이지만, 85세 이상은 76명으로 급증한다.
여성의 자가면역 질환도 위험요인이다. 면역 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병이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대표적이다. 여성은 임신 및 출산 과정에서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면역력이 남성보다 강하다. 이 면역 체계가 자가면역 질환으로 돌변할 수 있다. 뇌의 면역 시스템이 강할수록 부산물인 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쉬워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폐경에 따른 여성호르몬 감소도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호르몬은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유지하고 뇌세포 재생도 돕는다. 이런 호르몬이 크게 줄면 치매 위험이 커진다.
신체활동, 우울-난청 예방, 외국어 공부, 일기 쓰기...치매 예방에 도움 될까?
그렇다면 치매는 예방이 가능할까? 몸을 자주 움직이는 신체활동, 운동이 검증된 치매 예방법 중 하나다. 뇌 속의 혈류를 좋게 하고 뇌신경 염증을 줄여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할머니들의 뇌가 건강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최근 치매 예방을 위해 우울증, 난청을 막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친구-이웃과 교류하며 난청이 있으면 보청기를 써야 한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주변 사람과 소통이 적어지고 우울감-고립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귀의 신경 자극이 줄어들면 뇌 기능과 인지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인지 기능 유지에 외국어 공부, 일기 쓰기, 그림 그리기도 도움이 된다. 모두 뇌 신경을 자극하는 행동들이다. 일기는 꼭 정식 문장을 구성할 필요가 없다. 하루에 한 일, 가족-친지-친구 간의 교류, 취미 생활을 떠올려 메모 형식으로 기록해도 된다. 능동적으로 기억을 되살리고 손가락을 사용하면 뇌세포 활성화에 기여한다. 뜨개질이 인지 기능에 좋은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아침마다 우리나라 산 30개를 외우는 사람도 있다. 모두 뇌를 자극하는 활동이다. 편하다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으면 몸과 뇌가 점차 망가질 수 있다.
62세 A씨가 일기 쓰기,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은 노년에 아들, 딸에게 폐를 끼치기 싫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자신을 돌보는 자녀들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만일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스스로 요양시설로 들어갈 생각도 있다.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일상을 파괴하는 재앙이나 다름 없다. 내 육체 뿐 아니라 뇌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 지금 중년이라면 치매 100만 명 시대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