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니와치애’ 조로증, 치료제 나왔다는데…
[김명신의 유전자이야기] ⑦조로증과 노화의 극복
우리 모두는 늙는다. 수명은 각자 다르지만 인류 역사에서 노화를 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노화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질병도 있다. 이를 조기노화, 조로증(progeria) 또는 허치슨-길포드 조로 증후군(Hutchinson-Gilford progeria syndrome)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약 400만 명 가운데 1명 정도의 빈도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한 유전질환으로 국내에서는 김애란의 소설과 강동원 송혜교 주연의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서 알려졌고, 유튜브 ‘욘니와치애’를 통해서 소아조로증 환자 홍원기 군을 만나볼 수 있다.
조로증은 LMNA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는데, 이 유전자는 세포의 핵을 둘러싸고 있는 핵막의 주성분인 라민 A라고 불리는 단백질을 코딩한다. LMN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핵막이 불안정해지고 점차 세포의 모양이 변형되며 프로제린(progerin)이 체내에 빠르게 축적되어 때 이른 노화의 원인이 된다.
프로제린은 조로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서 뿐만 아니라 노화가 진행되는 일반인에서도 조금씩 생성된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신체의 노화는 세포분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초 단위인 세포는 분열을 반복하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면 분열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엔 멈춰 노화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텔로미어의 손실, DNA 손상 반응, 활성 산소 스트레스, 종양 유도 스트레스 돌연변이가 증가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 복제된 DNA는 오류를 검사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수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오류가 발생하는 빈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DNA 복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세포에 기능적인 영향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지만, 드물게 세포의 분열에 유리한 영향을 주는 돌연변이도 있다.
최근 혈액세포에서 돌연변이를 분석해 돌연변이가 있는 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클론성조혈증(clonal hematopoiesis)’으로 정의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는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클론성조혈증의 빈도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증가해 40세 미만의 건강한 사람 중에서는 1% 미만에서 발견되지만 70세 이상에서는 10~20%에서 발견된다.
돌연변이가 발생한 부위도 전체 환자의 약 2/3에서 DNA 메틸화에 관여하는 효소를 암호화하는 DNMT3A와 TET2 유전자임이 밝혀졌다. 그 외에 염색질 조절제인 ASXL1이나 스플라이싱 인자의 돌연변이도 종종 관찰되었다. 클론성조혈증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혈액암 발생의 상대적 위험도가 최대 10배 정도까지 높았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클론성조혈증을 가진 사람의 약 0.5%가 매년 혈액암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고하였다. 혈액암 외에도 클론성조혈증은 허혈성 뇌졸중 및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을 높이고, 40세 이전의 남성과 50세 이전의 여성에서 발생하는 조기 심근경색의 위험을 4배 정도 증가시켰다. 또한 클론성조혈증이 다양한 인간의 건강과 질병, 전반적인 사망률 등에 포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었으며 면역 기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도 계속 발표되고 있어 노화와 관련된 전신 염증 현상의 일부를 설명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에 노화를 공식적으로 포함한(Code MG2A: Old age) 이래로 노화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조로증에 대한 실마리를 가장 먼저 찾은 듯하다. 2020년 11월 ‘로나파닙(조킨비)’이 세계 최초로 조로증 환자의 사망 위험을 줄이는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박범준 교수 팀이 조로증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노화 극복은 아직 갈 길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노화가 오랜 기간에 거쳐 복합적인 메커니즘으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노화와 연관된 유전자 돌연변이가 어떤 사람에서는 생기고, 어떤 사람에서는 생기지 않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클론성조혈증이 건강과 질병,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도 확실치 않다.
동물모델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지만, 1988년 노벨상을 수상한 로베르트 후버 뮌헨공대 명예교수는 “노화 연구는 여전히 터널 속을 지나는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언제쯤 우리가 노화에 대해 심도 있게 이해하고 노화가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