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암치료
방사선 암치료—성진실의 방사선 이야기 30
얼마 전 유방암 수술분야의 권위자인 교수 한 분이 약 10년간 대장암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타계하셨다. 연세가 61세이니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실 나이라서 같은 암전문가 입장에서 안타깝기만 하다.
고인은 2003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적 절제를 받았는데 얼마되지 않아 간과 골반뼈 등에 다발성 전이를 겪게 된다. 수개의 작은 간전이 결절들은 초기에 잘 치료가 되었고 더 이상 확산은 없었다. 반면 골반뼈로 전이가 된 부분은 범위도 작지 않고 다리로 가는 중요 신경과 인접하였으므로 수술적으로 절제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무리하게 진행하게 되면 암을 떼어 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암세포가 전신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고 신경이 손상되면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되는 불구도 감수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뼈로 전이된 암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치료 결과는 좋았다. 그러나 정기 관찰하던 중에 치료한 바로 인접부위에서 다시금 골전이가 생겼다.
왜 전이가 생길까. 암이 생기는 과정을 보면 처음 한 개인 암세포는 세포가 분열하여 증식을 거듭하면서 점점 숫자가 늘고 따라서 크기도 커져간다. 그 개수가 십억 개 정도가 되면 크기가 직경 1 cm에 이르는데 이정도 크기가 되어야 일반적인 영상적 검사에서 암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의심하는 것이지 진단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암의 진단은 조직을 떼어 내어 여러 가지 특수 조직 염색을 거친 후에 현미경하에서 진단하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작은 덩어리가 몸속에 있을 때, 정확하게 표적을 맞추어 조직을 떼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조직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출혈도 되고 통증 같은 부작용을 드물지 않게 겪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애매한 시기에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게 된다. 즉 1~2개월이 경과한 후에도 크기가 변화가 없으면 그냥 두어도 좋을 양성 혹으로 생각하고 그사이 성장하는 것이 관찰되면 조직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그런데, 한 개로 시작된 암이 십억 개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더 이상 같은 성질을 공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암의 시작자체가 유전자 변이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변이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개중엔 순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성질이 고약하여 세포 증식 속도가 더 빨라지거나, 최초에 생겨난 집단을 이탈하여 인접한 부위로 침투해 나간다. 그 결과 크기가 커지고 주변 장기 또는 임파선까지 확산되는 등, 국소적으로 암이 진행된다. 즉, 암의 병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암의 전이는 이러한 국소적 진행과 병행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초기 병기보다는 중기, 후기에서 전이가 많이 일어 난다. 그러나 국소적으로는 암이 초기 단계인데도 광범위한 전이가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다. 어떤 경우는 전이암이 먼저 진단되어서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기 위해 각종 검사를 총동원하여도 원발암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암세포는 원래 이동 능력이 없는데, 악성도가 심화되면서 이동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들은 몸담고 있던 최초의 집단을 떠나 혈관에 진입하고 혈류를 따라 전신을 순환하게 되는데, 영양 공급이 좋은 입지를 만나면 정착하여 증식하는 것이다. 마치 유목민이 광야를 헤메다가 물의 공급이 좋고 가축을 먹일 수 있는 목초가 풍성한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늘어난 식솔로 인하여 더 이상 감당이 안되면 또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과 유사하다. 이곳이 폐나 간, 뇌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 뼈이기도 하다.
뼈전이암이 방사선 치료 후 인접부위에 다시 생기면 사실 곤혹스럽다. 일반적으로 방사선 치료 후에 다시 재발하는 암은 수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혈관 분포가 좋지 않아서 항암제가 도달하기도 어렵고 방사선 치료를 더 하는 것도 제약이 많은 탓이다. 더구나 처음 방사선 치료를 시행할 때에 주요 치료부위 뿐 만 아니라 인접 부위도 어느 정도의 방사선을 받았을 터이니 여기에서 생긴 암은 방사선에 매우 내성이 높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재발 부위가 주요 신경과 인접해 있어서 수술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당시 의료진들이 장시간에 걸친 토론을 하였고 결국 방사선 치료를 추가적으로 다시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재발암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허용하는 범위를 훨씬 벗어난 수차례의 고선량 방사선 치료로 인하여 국소적인 염증과 이로 인한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대장암은 비교적 악성도가 높지 않아서 간전이가 생겼다 하더라도 잘 제거하면 수년 생존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간과 뼈 등에 다발성 전이가 생긴 경우 10년까지 생존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암의 전이가 일어나면 일반적으로 전신적인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여 항암 약물치료법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것은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암 덩어리가 크고 개수가 많아 암의 총량이 버거울 정도가 되면 현재의 항암 약물이 효력을 보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들어서 전이성암에 대한 치료적 접근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전이암 갯수가 수개이내인 소수 전이일 경우, 방사선 치료를 해서 암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항암약물치료에만 기대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환자 본인은 초인적인 용기를 내어 어려운 시간을 마주 하였다. 신앙적인 확신으로 투병의 하루하루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암환자와 그들의 가족을 위한 영적 위로의 시간을 가지면서 봉사의 삶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신체 면역을 증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이 가까워 오면서 패혈증으로 힘들어 했지만 고인은 투병생활 대부분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부드럽게 웃는 낯으로 기꺼이 봉사의 시간을 가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