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줄리엣과 로미오’ ‘영희 철수’는 없을까?
英 과학자, “남존여비의 무의식적 전승”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남자의 이름이 여자의 이름보다 앞에
나열하는 어법이 현대에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영국 서리대학의 피터 헤가티 교수 팀은 ‘줄리엣과 로미오’가 아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쓰는 16세기 방식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알아보기 위해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흔한 남녀의 이름 각각 10개씩을 조합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예를
들어 ‘사라와 데이비드’와 ‘데이비드와 사라’를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남자의 이름이 먼저 놓이는 경우는
79%이고 ‘줄리엣과 로미오’처럼 여자의 이름이 먼저 놓이는 는 경우는 21%였다.
미국에서는 70%가 남자의 이름, 30%가 여자의 이름을 먼저 서술했다.
헤가티 박사는 이에 대해 “16세기부터 남성과 여성의 이름을 같이 나열할 때
남성의 이름을 앞에 쓰는 것이 보편화됐는데 이러한 16세기 어법이 현대 쓰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성별에 따른 이름의 서술 순서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21명을 대상으로 상상속의 이성애자
커플의 이름 5개를 적도록 하는 2번째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성적인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은 남성의 이름을 먼저 쓴 반면 성적인 고정관념이 약한 사람들은 남성의 이름을
먼저 쓰는 경우가 더 적었다.
헤거티 박사 연구팀은 마지막 세 번째 실험에서 86명을 대상으로 레즈비언이나
게이 커플의 이름을 상상하게 한 뒤 이들의 수입, 외모, 스포츠, 패션 등에 관해
비교하는 문장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가령 ‘사이몬은 존보다 체력이 더 좋다’라는
문장을 쓰도록 했다. 그 결과 우리가 흔히 남성적인 특징이라고 여기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 문장 앞에 서술되는 경우가 많았다.
헤거티 박사는 “현대에 ‘데이비드와 사라’처럼 남자의 이름이 앞에 쓰는 관습이
성차별적인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화법이
심리학적으로 성차별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이는 남자의 이름이 여자의 이름보다
앞에 서술되면 남성이 더 인기 있고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람들이 모르는 이의 이름을 나열할 때에는 남자 이름을 먼저 쓰고 여자
이름을 나중에 쓰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카드나 편지를 쓸 때는 친한 사람부터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사회심리학저널(the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됐으며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정신건강 정보 사이트인 사이키센트럴 등이
12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