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내 사랑 내 곁에’의 사랑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사랑 내곁에’는 루게릭병에 걸린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성의 이야기다. 박진표 감독은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
‘그 놈 목소리’ 등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켜 온 작품을 주로 연출했다. ‘죽어도
좋아’에서는 노인의 성을, ‘너는 내 운명’에서는 AIDS 환자 얘기를, ‘그 놈 목소리’에서는
유괴 문제를 다뤘다.
‘내사랑 내곁에’에 대한 기사 중에서는 ‘김명민’만 있고 스토리는 진부하다는
것이 적지 않다. 스토리는 약하고 오직 김명민의 20kg 살인적인 감량만이 포인트라는
것이다.
루게릭병은 근육 단백질이 점점 죽어가는 병이다. 정확한 의학용어는 ‘근위축성축색경화증’,
영어로는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ALS)’이다. 죽는 순간까지 ‘의식’은
살아 있다. 처음엔 팔과 다리 등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다가 눈 깜박임이나
혀 움직임 등 안면 근육에도 이상이 생기고 결국엔 내부 장기의 근육이 멈춰 버린다.
심장과 허파가 조여오는 것이다.
‘스토리가 진부하다’ ‘영화가 밋밋하다’는 평가는 아마 영화로서의 극적 전개로
인한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사실주의 소설을 읽으며
아이작 아시모프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생뚱맞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사랑 내곁에’는 ‘루게릭병’에 걸려 있는 ‘아직은 증상이 심하지 않은’
한 남자가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한 여자를 만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영화다.
루게릭병의 유병률은 10만 명당 1~2명이다. 주로 50대 이상에서 발생하기 시작하고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걸린다. 빠르면 40대에서도 증상이 나타난다.
40~50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창 일할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음식물을 흘린다. 회사에서도 퇴직을 하게 되고 퇴직금은 고스란히 비싼 약값으로
나간다.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고 근육의 퇴화를 막기 위해 물리치료를 받는 게 ‘최선’이다.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등에 욕창이 생기기도 쉽다. 대소변도
오롯이 ‘남의 손’에 의존해야 한다.
기자에게는 이 영화가 ‘현실’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가장 친한 선배의 아버지가
이 병을 5년 동안 앓다가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죽을 때는 구차하게 죽기
싫다’ ‘고귀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해라’라고 건강하실 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부친이 불편한 입으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살고 싶다’였다.
영화는 단편적이나마 ALS 환자들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지 몰라도 한국의 1000명 정도 되는 ALS 환자 가족에게는 ‘현실의
거울’이고 ‘참혹한 기억의 회상’이 될지도 모른다.
‘내사랑 내곁에’가 개봉한 날 그 선배와 전화 통화를 했다.
자기는 그 영화 못 볼 거 같다고, 보면 누워 계셨던 아버지 생각, 병수발 들던
가족들 생각이 나서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고….
영화에 대해 뭔가 허전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마 보다 극적인 사랑 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쩌면 아픈 사람에 대한 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감독은 지금까지 ‘죽어도 좋아’에서부터 ‘너는 내 운명’ ‘그 놈 목소리’까지
입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스크린에 녹여놓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도
그런 시각에서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에서 박 감독은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마비를 간호하는 남편, 9년째 병실에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돌보는 할머니, 형을 간호하기 위해 회사도 때려치운 동생,
촉망 받는 스케이팅 선수였지만 척추 부상으로 전신마비가 된 소녀와 그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고,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쓴다.
의학기자로서 루게릭병, 근이영양증, 다발성경화증 등 난치병 환자들과 부대끼며
취재하면서 절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벼랑 끝에 있는 환자들을 가족의 손에만
맡겨놓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지원이나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 곁에는
오로지 가족 밖에 없다. 그래서 ‘내사랑 내 곁에’의 제목부터가 필자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박 감독은 내가 느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절실한 사랑 얘기를
기대한 일부 비평가는 절대 공감하지 못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