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책임 공방’ 보단 대안 절실”…중재기구 제도화 필요

대한병원협회 토론회... "정부-전공의 대화 우선" 한 목소리

의료공백 사태가 한창인 3월 중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 대기 중 잠들었다. [사진=뉴스1]
의료계 중진들이 의정갈등 해결을 위해 조속한 대화와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11일 대한병원협회는 ‘KHC 2024’ 국제 학술대회에서 ‘의대증원 정책 어떻게 풀어야 하나’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서 토론자들은 정부와 전공의 양측의 대화와 협의체 구성엔 대체로 동의했지만, 시기와 실효성 있는 형태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이날 △윤을식 대한수련병원협의회장(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좌장으로 △고려대 안덕선 명예교수(전 의학교육평가원장)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 △전국의대교수협의회 김창수 회장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좌장을 맡은 윤을식 원장은 “시간이 많이 없다”면서 “전공의가 복귀해 정상적으로 수련을 받기 위해선 이달 20일~30일 사이엔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협의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면서 “하루 빨리 협의체를 구성해 대표자에게 전공의들의 대안을 전달하고 정부와 논의해 대한전공의협의회 투표까지 마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공의 요청, 증원 철회 아닌 원점 논의”

이날 토론회에서 김창수 회장은 정부의 ‘결자해지’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전공의 요구를 수용해 빠르게 ‘원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협의체 시작은 정부가 전제조건 없이 이를 구성한다고 말하면 해결될 일”이라며 “정부는 ‘2000명’ 전제를 고정해둔 채 제안을 가져오면 고려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공의가 제시한 조건은 (의대증원의) 무조건적 철회가 아니라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논의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위원회(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의료계가 정부의 정책 철회만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사태 해결이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용진 교수는 “목적이 전공의 복귀만이라면 정부가 의대 증원을 전격 철회하면 된다”면서도 “의료개혁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 2000명도, 0명도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쪽만 물러서기를 요구한다면 사태는 ‘도돌이표’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어 “현재 몇몇 전공의의 주장이 있을 뿐 전체 전공의의 입장은 없는 상황”이라면서 “속히 협의체를 만들어 ‘0명’을 제외한 ‘전공의의 (전체) 입장’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촉구했다.

11일 대한병원협회는 ‘KHC 2024’ 국제 학술대회에서 ‘의대증원 정책 어떻게 풀어야 하나’ 토론회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 김창수 회장 △고려대 안덕선 명예교수(전 의학교육평가원장). 사진=최지현 기자.

제대로 된 협의체 절실…전공의와 함께하는 중개기구 제안도 나와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 의료계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의대증원 등 의료정책을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의 필요성이 여러차례 언급됐다.

권 교수는 우리 사회체계 안에 의료갈등을 예방하거나 중재할 만한 제도도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와 정부 양측에서 벗어나 중재하는 ‘중간자’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갈등을 예방하는 법률을 마련하는 독일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제3자의 (법률) 대리인을 각각 내세워 합의를 이끄는 프랑스의 중재제도나 △의료계를 동등한 정책 파트너로 대우하는 영국의 의료체계 등 어느 쪽도 구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이제 우리도 의료갈등에 대한 중재제도를 논의할 때가 됐다”면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제3의 그룹을 만들고 이들이 사회적 중재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선 교수는 이 중재그룹으로 전공의와 함께하는 협의체를 제안했다. 안 교수는 “전공의와 협의체를 만들어서 협의하는 것이 곧 중개기구”라면서 이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중개기구(intermediate·중간지대) 구축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이어 안 교수는 “사회 (어떤 분야) 속에도 중재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면서 “전공의협의체와 의료계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갈등과 대립을 중재하기 위한 중개기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현 상황에서 책임 공방보다는 당장의 의료시스템 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지금까지 의료체계의 문제를 방치했던 의사들의 책임도, 미숙하게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책임도 당연히 있다”면서도 “정부가 이제와서 ‘백기투항’해 2000명 증원을 철회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젠 과거와 같은 의료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조 원장은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전공의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전방위적으로 ‘이렇게는 지금의 의료시스템이 유지될 수 없다’는 변화에 대한 전방위적인 설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1일 대한병원협회는 ‘KHC 2024’ 국제 학술대회에서 ‘의대증원 정책 어떻게 풀어야 하나’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사진=최지현 기자.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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