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별 알려주면…낙태 가능성 더 높아질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십년 전만해도 집안에서 아들은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특히 첫째와 둘째가 딸이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셋째를 가질 것을 강요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며느리는 어쩔 수 없이 셋째를 임신하고 산부인과로 가서 아기의 성별을 확인하여 남아면 임신을 유지하고 여아이면 낙태시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통계자료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여아와 남아의 자연성비는 1대1이어야 한다. 하지만 1993년 조사에 따르면 셋째아이 이상의 출생성비가 여아 100대 남아 209로서 남아비율이 급격히 높았다. 이렇게 임신초기에 태아의 성별을 확인하고 여아인 경우 낙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1987년 국회는 의사가 진찰 또는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와 임부의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알리는 것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2008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자 2009년에 낙태가 어려운 시기인 임신 32주 이후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려 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2주 이전에 의사가 임부나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리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렇게 법에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자 의사들은 임부나 그 가족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임부와 그 가족들은 아이의 성별을 너무 알고 싶어하고, 성별에 따라 출산 전에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 많은데 의사가 성별을 알려주지 않아 준비하기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의를 받는 의사들은 임부초음파를 보면서 ‘뭐가 보이네요’ ‘핑크색 옷이 잘 어울리겠네요’ 등 간접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임부와 가족들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를 잇는다는 유교적인 의식이 감소하고 남아선호 사상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남녀 출생비가 점차적으로 자연성비와 유사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에는 여아 100명당 남아 146명으로 줄었고 2010년에는 110.9명, 2021년에는 105.4명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즉 태아의 성별에 따라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불구하고 32주이내 임부나 그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리는 것을 금지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최근에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태아를 임신한 임부와 배우자인 A는 임신 32주까지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알리지 못하게 하는 현재의 의료법 제20조는 헌법 제10조로 보호되는 부모의 태아의 성별정보접근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사회경제적인 지위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사회변화를 고려할 때 임신 32주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박탈하는 낙태행위의 전단계로 취급하여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유로운 욕구로서 현재의 규정은 태아생명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효과적이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입법수단으로서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실제 낙태할 의도가 없는 부모도 규제하기 때문에 법익의 균형성을 상실하였고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다고 하면서 6:3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헌법재판소 2024.2.28. 2022헌마356 결정)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소수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현재 전통적인 유교사회의 영향인 남아선호사상이 상당히 쇠퇴하였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고, 이미 낙태죄도 사라진 상황에서 남아선호로 한정을 짓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의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태아의 성별고지 제한까지 사라지면 자신들의 자녀계획에 따라 태아의 성별에 따라 임신중절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거에 폐지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따라 이들은 현재의 32주를 좀 더 앞당기도록 개선입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위헌결정이 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처벌될 염려없이 임부나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변화가 다시 변화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상황이 오면 다시 이 법을 부활시켜야 할까?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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