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졸업, 그리고 요양

[최낙천의 건강세상 건강국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어느덧 2월 마지막 주다. 취학 전 보육과 누리과정을 비롯해 초중고, 대학과 석박사 그리고 온갖 종류의 평생교육까지 대한민국에 최소 200만명 이상의 졸업생이 쏟아지는 시즌이다. 졸업은 과정의 경중이나 난이도를 떠나 이수 요건을 하나 하나 충족하며 피말리는 시간을 이겨낸 끝에 누리는 자유를 상징한다. 그래서 졸업 당사자에게는 가족과 주변 친구들의 많은 축하와 격려가 쏟아지는 인생의 성취인데, 10명이 넘는 친조카들을 둔 필자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이다. 그런데 필자도 나이가 인생의 중반기를 넘기고 보니 학업의 졸업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생업활동의 끝에 우리 인생에는 또 다른 의미의 졸업들이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인생 후반의 졸업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간 거꾸로 가는 벤자민도 치매 맞닥뜨려

2009년 개봉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는 영화가 있다. 80세 노인의 얼굴과 신체 기능으로 태어나 부모로부터도 버림받은 벤자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 주름은 사라지고, 굽은 허리는 펴지고 육체는 점점 왕성해진다. 이 영화는 이렇게 타인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거쳐 종국에는 어린 아이의 상태로 돌아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다양한 인연들과의 만남과 사랑을 이색적 시각으로 보여 준다. 스토리 자체도 워낙 특이하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 온 대목은 주인공이 6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외모는 10대인데 치매에 걸려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잃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자 어느덧 할머니로 늙어버린 옛 연인이 벤자민을 거두어 기르고 임종까지 지키는 장면이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데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 속에서도 치매는 피할 수가 없었나 보다.

치매는 현대의학에서 뇌 질환으로 분류하지만 필자는 치매를 인간의 긴 인생 중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인류 수명이 채 50년이 되지 않던 시절, 치매로 정의될 정도의 뇌의 노화는 일부 사람들에서만 발견되는 질병이었지만 수명이 충분히 길어지면 유아기나 사춘기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게 될 인생의 단계라는 발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치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수 많은 시니어들에게 저주의 상징이자 가장 두려운 미래라지만, 역설적으로 당사자에게는 삶의 끝에 맞이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졸업일 수도 있다. 수십년 간을 가족과 사회에 봉사해온 한 영혼이 가장 순수하게 본능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이니까.

필자가 속한 KB 금융그룹은 요양원과 노인복지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라는 회사를 8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필자가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는 KB헬스케어와 더불어 이어령 선생님께서 말년에 주창하신 ‘생명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회사이다. 혹시라도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말씀드리는데 해당 요양시설은 광고나 홍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대기자가 수용 인원의 10배가 넘어 등록 후 입소까지 수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별히 이 자리를 빌어 KB가 운영하는 요양사업이 왜 그렇게 수요가 넘치는지 영업비밀을 하나 공개하고자 한다.

양질 요양시설 부족 문제 미리 대비해야

10배의 대기 수요는 KB의 브랜드 파워나 서울 도심에서 자가로 20~30분 내에 방문 가능한 입지, 훌륭한 관리와 운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필자는 이를 승차감과 하차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요양원 입소자의 80% 이상이 치매환자라는 사실은 요양시설의 직접적 소비자들이 서비스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말한다. KB 요양원은 오히려 입소자보다는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 자녀들의 죄책감과 불안감을 덜어주는데 집중을 한다. 비유를 들어보면, 요양원에 계신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감사보다는 요양원을 방문한 친척들의 칭찬이 더욱 의미있는 고객 소구력이다. “OO아, 너 정말 잘했다. 어머니/아버지 정말 좋은 곳에 모신 거 같다” 이런 이모나 외삼촌의 진심어린 칭찬 말이다. 자동차가 가계의 필수품으로 보급되던 시절에는 승차감이 차량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자동차를 여러 대 보유하는 시대에 차량 선택의 기준은 하차감이다. 요양시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충족하는 요양시설은 무척이나 부족하다. 물론 보편적 복지의 이름으로 공공 요양시설의 공급도 더욱 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X세대가 부모를 모시고 싶은 요양원은 더더욱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요양시설의 부족은 두드러진다. 장기요양 운영기관에서 소규모 개인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75.7%(비영리 21.6%, 영리 2.5%)로 매우 높다 보니 30인 이하 영세시설의 비중이 69%에 이르고 도심의 높은 토지 및 건축비로 인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요양시설 충족률은 1~2등급 요양 인정자를 기준으로 해도 7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5등급까지 전체 인정자 대비 시설요양의 수용 인원은 10% 수준으로 급락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에 부족한 것이 요양시설만은 아닐 것이나 전체 65세 고령 인구의 약 10%가 요양등급 인정자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 및 요양 인정 비중의 지속적 증가를 고려하면 가까운 시일 내 요양시설 부족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정부는 조금은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가며 정책 변화를 통해 민간이 스스로 미래의 리스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질의 요양시설은 입지 선정부터 매입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인프라 사업이다. 정책 변화가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영역이 아니다. 졸업 후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젊은 세대들이 40여년 동안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인생의 졸업 후에 다시 양질의 시설을 찾아 헤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낙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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