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기독교 마음 챙김이란?

[채규만의 마음이야기]

기독교 마음 챙김은 “임마누(지금 여기에) 엘(하나님)”에 근거하고 있다(마태복음 1장 23절).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마음과 행동 변화를 추구하는 심리치료 초기에는 인간의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데 초점을 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를 중심으로 발달해 오다가, 동물의 행동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행동 수정의 원리를 인간 행동 변화와 수정에 적용한 행동 치료, 그리고 인본주의와 실존 철학에 근거해서 인간중심의 치료, 그리고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 인지행동 치료로 발전을 해오고 있고, 아직도 인지행동 치료가 연구와 근거가 있는 치료 기법으로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신경과학에 근거한 마음챙김 심리치료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필자가 시리즈로 이미 소개한 마음 챙김은 존 카바친이 제시한 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대처 훈련에 많은 관심을 받았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바친은 인도에서 명상 훈련을 받았는데, 동양의 명상 훈련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 특별한 방식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훈련이 스트레스뿐만이 아니고 우울, 불안, 외상 치료 등의 각종 치료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명상이라는 이름 대신에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현재는 심리치료 분야에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마음 챙김은 주로 “삶의 현재 순간에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경험을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불교의 선(禪)과 명상(冥想)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기독교 마음 챙김의 정의

기독교 마음 챙김은 “임마누(지금 여기에) 엘(하나님)”에 근거하고 있다(마태복음 1장 23절). 즉 지금 우리 마음에 현존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알아차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은 주의를 기울이며 하나님과 친밀감의 교류를 하며 함께 기쁨을 누리는 과정이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기도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과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대화는 영적인 5감을 활용해서 예수님께 집중한다. 영적인 청각(마가복음: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으라 하시니라), 영적인 시각 (마태: 13 : 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을 활용하고 우리의 주의와 인식이 예수님께 각성된 상태를 유지한다(마태복음 25:1-13: 결혼식의 비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

또한 기독교 마음 챙김은 어느 한순간에만 임마누엘 하나님께 각성하고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한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의식하고 대화하는 것을 강조한다(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현존을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눅 24 : 17-32: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임재를 했지만 알아보지 못했음,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동안 마음이 뜨겁다는 것을 경험했음. 즉 신체적인 감정 변화를 느꼈음).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동행을 해도 우리의 영적인 촉각이 둔할 때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 임재에 대한 영적인 각성 훈련이 기독교 마음 챙김의 초점이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본마음 챙김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의 기울이기(paying prayerful attention)인 관상기도”를 강조했는데 현대의 마음 챙김과 일치하는 기도이다. 즉 이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차리면서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열상: 19:12: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들음: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느라; 데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초기 기독교

로마 제국하에서 기독교가 핍박을 받을 때 기독교인들이 사막으로 도피하면서, 우리 마음 내면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임재를 갈망했다. 예수님 제자들은 영적인 아버지(abba)와 어머니(amma)에게 사랑을 받고자 노력했다. 아타나시우스(251-356 AD)는 작은 독방에서 마음 챙김 덕분에 예수님을 만나면서 회심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방 정교회(7~8세기)는 우리의 현재 생활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집중하기 위한 예수 기도(Jesus Prayer)를 강조했다. 베네딕토(Benedict Nursia)는 무욕망과 깨어 있음을 강조하고, 공동체에서 마음 챙김 실천을 강조했는데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마음 챙김 기도를 실천했다.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모임은 성경을 읽는 순간, 임재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성경을 읽고 자주 멈추고 하나님과 교류를 시도했다.

성 패트릭(St. Patrick: 5세기)의 기도문은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위, 아래, 옆, 뒤, 안팎에 존재하는 예수님의 임재를 표현하고 느끼면서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는 예수님을 알아차리는 마음 챙김 훈련을 강조했다. 한 마디로 초기 기독교는 우리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기 위해 수도 생활, 동굴 생활, 청빈한 생활을 강조했다.

▸중세 기독교

교회가 권위적이고 성경을 사제가 독점하고 교인들과는 동 떨어진 신앙 때문에, 교인들은 하나님과 몸으로 만나는 영성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묵주 기도, 성당의 스테인 글라스 창문, 뾰족한 성당건축은 우리의 감각을 여기에 임재하신 하나님 마음 챙김에 사용했다. 14세기 경건 운동(Modern Devotion)은 하나님과 성화 된 삶에 매일 마음 챙김 운동을 실천했다. 성 프란시스코(St. Francisco, 1181-1226)의 수도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태양 형제, 달 자매라고 부르면서 창조물을 가족처럼 부르면서 우주 만물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마음 챙김 하려고 노력했다. 중세의 신비주의는 현실을 회피하고 신비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묵상하고 침묵 기도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주의를 집중하는 영성을 실천하는 경험적인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에는 종교의 세속적 제도와 부패에서 벗어나 예수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내재화하려는 전통을 이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초창기 현대 기독교

로욜라의 이그나시오(Ignatius of Loyola: 1491-1556)는 예수회의 창시자이며, 영성 수련(Spiritual Exercise)은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영성 실천 개발했다. 만물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물은 하나님 안에 있다고 강조하고, 사소한 모든 것과 일상들이 하나님과 깊은 친교의 교재 길을 열어주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 인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의 집중훈련, 영성 훈련, 말씀과 일상에서 예수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훈련을 했다. 테레사 수녀(Teresa of Avila: 1515-1582)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를 마음챙김 하면서 회상기도(recollect)를 통해 감각을 모으기를 강조했고 우리 중심에 있는 하나님을 향해 ‘내 영혼의 작은 천국’ 마음챙김을 강조했다(기독교 마음챙김 다음 주에 계속)

    채규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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