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치료제 FDA 허가…의료 신기원 열까?

유전자 편집해 치료하는 시대 개막… 가격-잠재적 위험성 등 걸림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치료제가 영국과 미국에서 연이어 허가를 받으면서 인간 DNA를 편집해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치료제를 지난 8일(현지시간) 허가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를 시작으로 사람의 DNA를 직접 고쳐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에 허가를 받은 ‘카스게비(Casgevy, 미국 제품명 엑사셀)’는 크리스퍼테라퓨틱스와 버텍스파마슈티컬스가 공동 개발했다. 12세 이상의 중증 겸상적혈구병(SCD)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다.

지난달 16일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에서 조건부 판매 허가를 승인받은 데 이어 FDA 허가까지 획득한 카스게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치료법 중 하나가 됐다.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크리스퍼-카스9, 이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을 활용해 인간의 유전자를 직접 편집하는 최초의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단 한번으로 부작용 없이 치료 가능?

유전자 가위는 인간의 DNA를 이루는 염기서열 중 특정 부분을 잘라내고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기술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것은 물론 유전병과 난치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초기(1·2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은 10~15개의 염기서열을 인식해 자르는 수준이어서 정확도가 떨어지고 원하는 부분을 편집할 확률도 낮았다. 인간의 DNA 염기서열은 약 30억 쌍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반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위 구조만 바꾸면 어떤 염기서열도 인식해 자를 수 있어 정확성과 속도 면에서 크게 앞선다. 201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존에 2년 정도가 걸리던 유전자 변형 실험을 이론상 약 1~2주에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카스게비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겸상적혈구병 환자의 유전자를 편집한다. 환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정상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막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 이후 자른 부분을 그대로 이어붙여 환자에게 다시 주입하는 방식이다.

겸상적혈구병은 적혈구 모양이 낫처럼 바뀐 병이다. 낫 모양의 적혈구가 서로 얽히면서 혈관을 막아 심장질환 합병증을 유발하는데, 환자의 대부분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 기존에 겸상적혈구병 환자는 건강한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는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면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편집해 그대로 이식할 수 있다.

제조사 측은 FDA에 제출한 허가 서류에서 “단 한 번 치료제를 사용한 환자 31명 중 29명에게서 혈관 폐쇄 등의 부작용이 24개월 간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러한 효과가 평생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꿈의 치료제’가 넘어야 할 벽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편집해야 할 염기서열만 정확히 파악하면 유전자 편집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그야말로 ‘꿈의 치료제’다. 전 세계 제약업계가 겸상적혈구병에 이어 유전성 난치병, 희귀암종 등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걸림돌이 남아 있다. 첫째는 가격이다. 카스게비는 220만 달러(약 29억원)가 책정됐다. 카스게비와 같은 날 겸상적혈구병에 대한 FDA 승인을 받은 블루버드바이오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 ‘리프제니아(Lyfgenia)’ 가격은 이보다 비싼 310만 달러(약 41억원)다.

제조사에서 ‘평생동안 한 번만 맞아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각국 보험 적용 범위에 따라 실제 환자들이 부담하는 가격은 일부 내려갈 여지가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환자들이 엄두도 못 낼 ‘넘사벽 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인 만큼, 그 영향력으로 인한 잠재적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바로 환자에게 장기적인 영향이 어떨지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한계로 흔히 지목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리프제니아 임상 참가자 2명에게 혈액암이 발생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약물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FDA는 장기적인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혈액암에 대한 경고를 추가했다.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도 남아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의 끝에는 결국 ‘입맛에 맞는 인간을 제작하는 시대’가 기다릴 것이란 우려가 과학계에서도 나오는 상황이다.

일례로 지난 2015년 중국 연구팀이 인간 배아의 혈액 질환 유발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했을 때, 의학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 모두 윤리적 문제로 논문 게재를 거부한 바 있다.

카스게비를 시작으로 전 세계 제약업계가 유전자 편집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가격과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 진정한 ‘꿈의 치료제’가 탄생할지 주목된다.

    장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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