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의 유사성행위 제한이 위법한가

[박창범 닥터To닥터]

HIV감염인은 비록 자신이 약물을 복용하여 성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새로운 질병은 대중에게 공포와 불안감을 일으킨다. 이런 차별대상이 된 대상자들은 가족과 공동체에서 거부되거나 사회적 소외감과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감염자들이 감염사실을 숨기게 만들어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HIV 감염인 및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 (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소위 에이즈 환자들이다.

HIV는 1980년대에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당시는 발병 초기 치사율이 매우 높아 급성 감염병으로 인식되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항바이러스 병합요법이 개발되면서 HIV 보균자들이 에이즈로 진행하는 경우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HIV 보균자의 생존기간도 급격히 연장되고 그 전파력 또한 크게 저하됨에 따라 만성 감염병으로 전환이 되었다. 따라서 HIV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항바이러스 약물치료와 관련된 합병증 치료만 적절히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질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정상인과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에 따르면 ‘감염인은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안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HIV감염인이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합의하에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한다면 문제가 되는가? 콘돔을 사용한다면 그래도 문제가 되는가? 감염인이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알리지 않고 구강성교와 같은 유사성행위를 한다면 문제가 되는가? 최근 이와 관련된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A는 자신이 HIV에 감염된 사실을 숨긴 채 한 여성과 실제성행위가 아닌 구강성교 등 유사성행위를 하였다. 이에 A는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전파매개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해당법원은 법률에서 규정한 ‘전파매개행위’는 성행위 또는 유사성행위 등 어느 행위까지인지 불분명하고, 법률에서 규정하는 ‘체액’이 무엇인지 불명확하고, 현재 법조항의 모호한 전파매개행위 금지로 인하여 타인을 감염시킬 우려가 없는 감염인들이 접촉을 동반한 인간관계를 모두 포기하게 하여 행동자유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그 처벌정도도 다른 질환에 비하여 너무 과다하다는 이유로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감염인이 의학적 치료를 받아 HIV 전파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상대방이 스스로 자율적 판단에 따라 감염인과 성행위를 할 것인지, 예방조치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체액’이란 타인에게 감염을 일으킬 만한 HIV를 가진 체액으로 한정되고, ‘전파매개행위’란 타인을 HIV에 감염시킬 수 있는 행위에 국한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콘돔사용 등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모유수유, 오염된 주사바늘이나 의료기구사용, 수혈, 혈액제제투여 등과 같이 타인을 HIV에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행위로 한정된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HIV 감염인이 다른 사람을 HIV에 감염시킬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인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예방조치 없이 성행위를 한 경우에는 ‘전파매개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현재의 법률은 명확성원칙을 위배하지 않고, 감염인들이 타인을 감염시킬 우려가 없더라도 감염된 사실을 알리기를 강제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모두 포기하게 하여 행동자유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그 처벌정도도 다른 질환에 비하여 너무 과다하다는 것에 대하여 일상적인 신체접촉은 금지 및 처벌대상이 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알리는 것은 상대방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합당하고, 감염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낙인은 해당법률을 폐지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 인식개선 교육이나 홍보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고, 처벌이 너무 강하다는 것에 대하여 책임에 비하여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합헌으로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 2023.10.23. 2019헌가30결정)

참고로 미국의 경우 과반수가 넘는 주들이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일본의 경우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독일은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에 대한 특별처벌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감염인이 콘돔없이 성행위를 하는 경우 HIV감염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처벌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감염인이 약물치료를 잘 받아 HIV검사결과 검출한계치 미만임이 입증된 경우 무죄나 불기소처분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정리하면 HIV감염인은 비록 자신이 약물을 복용하여 성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또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체액은 타인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체액이고, 전파매개행위는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행위에 한정된다. 주의할 것은 타인을 HIV에 감염시킬 가능성이 매우 낮은 HIV 감염인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인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예방조치 없이 성행위를 한 경우에는 ‘전파매개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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