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은 가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9: Park SE, Kim ND, Yoo YH. Acetylcholinesterase plays a pivotal role in apoptosome formation. Cancer Res 2004;64:2652-2655.

■ 박상은 연구원
■ 학문적 의의: Acetylcholinesterase의 아폽토솜 형성 기작 규명

지도교수가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떠나며 박상은 선생의 연구지도를 부탁하였다.

연구 인력 한 명이 추가되면 인건비와 실험비용 등 지출이 만만찮다. 당시 연구비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공식 지도교수가 따로 있으므로 비공식으로 학위를 지도하여야 한다는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그때 “좋은 일은 가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나는 박상은 선생의 가담이 내 실험실 미래에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고 청을 받아들였다.

이후 예기치 않게 내 실험실에 들어온 박상은 선생은 복덩이가 되었다. 특히 유전자 침묵법으로 내 연구실 실험을 상향시켰다.

나는 2003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세포사 심포지움에 참가하여 세포사 연구를 이끌던 최고의 학자들에게서 강의를 들어 세포사 기전에 대한 지견을 넓혔다. 특히 이 심포지움에 전시한 부스들을 방문하며 유전자 침묵법을 실험실에서 쉽게 사용할 길을 찾았다.

귀국 후, 나는 박상은 선생에게 이 기법을 전수하였고, 박 선생은 이 기법을 능숙하게 적용해 나갔다. 이후 유전자 침묵법은 거의 모든 실험에서 직접증거를 얻는데 적용하게 되었다.

본 연구 수행 전, 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에스터라제’(AChE)가 여러 세포들의 세포사에서 발현이 증가한다는 한 선행논문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나는 박상은 선생에게 “유전자 침묵법을 적용하여 이 효소가 작용하는 기작을 밝혀내라”는 과제를 주었다.

박 선생은 열심히 연구하였다. 놀랍게도 AChE가 Apaf-1과 cytochorome c의 결합체인 아폽토솜 형성에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아폽토솜 형성에서 AChE 역할을 보여주는 그림. [자료=유영현]
아폽토솜 형성은 세포사가 진행되는 과정의 결정적 현상이다. 이어지는 자료들도 놀라웠으나, 나는 아폽토솜 형성 부분까지만 모아 세계 연구자들에 신속하게 알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AChE가 아폽토솜 형성에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 ‘Cancer Research’에  발표

1941년부터 간행된 암 분야 최고 권위를 가진 ‘Cancer Research’ 잡지에는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암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발견들을 상호 교환하는 토론장”이라는 취지를 가진 ‘Advances in Brief’ 범주가 따로 존재하였다.

주요한 자료만 넣어 짧게 작성하여 제출하고 신속하게 게재를 결정하는 이 범주는 논문 채택률이 ‘Cancer Research’ 다른 범주에 비하여 낮았다.

고민하였지만, 독자들에게 신속하게 알리겠다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 범주에 논문을 제출하였다. 2월 25일 제출한 논문이 다음 달, 3월 2일 바로 채택되었다. 뛰는 듯이 기뻤다.

본 논문의 history (Cancer Res 홈페이지 캡쳐) [자료=유영현]
본 논문이 채택되자 서울대 암연구소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영광이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서울대 연구자들 앞에서 강의하는 날, 뿌듯하였지만 꽤 떨렸다,

강의 후 질의 문답 시간이 되어서야 ‘국립암센터’ 연구자들까지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연구 결과가 ‘부산 촌놈’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준 셈이다.

이 논문은 후에 SRC센터 과제 신청할 때 대표 논문으로 당당히 이바지하였다. 계획에 없이 예기치 않게 들어온 연구원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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