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길 Vs 모함꾼들의 길

[이성주의 건강편지]

2023년 08월 14일ㆍ1586번째 편지


1592년 오늘(8월 14일)은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한산대첩이 벌어진 날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해군은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일본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서 학익진으로 대파했지요.

와키자카는 이에 앞서 용인전투에서 1600명의 병력으로 조선군 5만명을 무찌른 적이 있어서 조선 수군도 얕봤다가 죽기 직전까지 갑니다. 간신히 무인도로 도망가서 13일 동안 솔잎과 미역으로 연명하다 겨우 도망칩니다. 그는 절치부심하다가 나중에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는 데 기여하지만, 명량에서 또다시 이순신에 패배합니다. 와키자카는 일본으로 되돌아가 이때의 일을 정확히 기록했고, 그의 가문에는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날에 미역만 먹는 풍습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대기만성형의 위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역사가 간과하지만, 장인과 부인 방씨가 아니었다면 성웅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충무공은 20세 때 병조판서 이준경의 중매로 온양의 유력 가문에 장가를 갑니다. 이때만 해도 처가에 가서 지내는 것이 흠이 되지 않았습니다. 장인 방진은 활쏘기로 유명한 무장 출신으로 보성군수를 지냈으며, 이순신과 혼인한 딸도 무예가 출중했다고 합니다. 처가는 이순신이 무과 시험을 보도록 지원했으며, 부인 방씨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밤에 숲에서 남편의 무술 상대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순신은 28세 때 무과 시험에서 낙마해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계속 치렀지만 시험에 떨어졌고, 32세 때 무과에 급제합니다. 부인의 철저한 내조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방씨가 자신의 패물로 말을 사서 남편이 낙마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훈련에 매진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 난 이순신은 옳은 길을 가다가 끝없이 모함을 당하며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방부 인사과장의 인사 청탁을 물리쳤다가 인사 불이익을 당합니다. 함경도에서 여진족 추장을 생포했지만 상관의 시기와 모함으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합니다. 또 기습한 여진족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했지만 모함을 받아서 참수형 직전까지 갔다가 볼기짝을 맞고 백의종군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불평하지 않고 뚜벅뚜벅 자기의 길을 갑니다.

충무공은 류성룡과 뜻있는 인사들의 천거로 승진을 거듭했지만, 조정의 많은 신하들은 이순신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을 계속 반대했습니다.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한 선조도 이순신이 기적에 가까운 전공을 계속 세우자 결국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순신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으며 나라를 구하고, 영웅의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사람으로서 충무공 같은 위인이 되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충무공을 모함하고 역경에 빠뜨린 사람들의 길은 가지 않아야 할 텐데, 그것은 쉬울까요? 모함한 사람들도 ‘패거리’ 안에서 나름대로 이유를 공유했을 겁니다. 그 이유를 믿었을 겁니다. 우리는 혹시 지금 그런 일을 거리낌없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멀리 통영 남해 앞바다에서 한산대첩이 벌어진 날, 충무공의 목소리를 떠올려봅니다. 그의 삶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요?

포기하지 말라=충무공의 전과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명량해전 때에는 13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군과 맞서는 것에 대해 아군도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와 철저한 준비로 기적을 이뤘다.

늦었다고 꿈을 버리지 말라=충무공은 첫 과거에 낙방하고 32세에 겨우 과거에 붙었다. 그리고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아다녔다.

환경 탓하지 말라=충무공은 의롭지 못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으며, 임금의 끝없는 의심으로 죽을고비까지 갔다. 조정의 지원을 못받자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어 풍부한 물자의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뒤 47세에 해군제독이 됐다.

끊임없이 공부하라=전략과 전술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첫 번째 나간 해전에서부터 연승했다. 충무공이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았다면, 다른 모든 장점도 빛을 내지 못했을 것.

정보를 모으라=충무공의 정보 수집 노력은 지금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어떤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결정을 명쾌하게 하라=충무공은 징벌도 엄격하게 시행해 군기를 유지했다. 상벌이 이리저리 흔들리면 리더십이 흔들린다.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자리, 돈, 명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큰 뜻을 망가뜨린다. 그것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기꺼이 일하라.

공을 탐하지 말라=충무공은 모든 공을 부하에게 돌렸고 장계의 맨 끝에 이렇게 썼을 뿐이다. “신도 싸웠습니다.”(臣亦戰)

가족의 지지를 이끌어내라=충무공은 부인의 지지를 적극 받아들였고, 가족의 지지를 바탕으로 세상의 풍파와 맞서 이길 수 있었다.

1964년 오늘 태어난 영국의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안드레아 보첼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 준비했습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배경으로, 듀엣이 열창하는 ‘Time to Say Goodbye’ 감상하겠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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