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정신질환 앓는 범죄자 치료…병은 죄가 없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 인터뷰

최근 ‘묻지마 칼부름’ 사건’ 등이 잇달으며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범죄 동기를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섣불리 추정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늘어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잇달아 벌어지는 흉악범죄에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정신질환’이다. 피의자가 과거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범죄의 동기를 정신질환으로 확정해버리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과연 정신질환자는 예측과 예방이 불가능한 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불안한 존재일까? 정신질환을 앓는 범죄자들을 30년 넘게 치료해온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을 만나 정신질환과 범죄의 연결 고리에 대해 물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립법무병원은 재범 방지를 위해 범법 심신장애인을 치료한다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단과 규모가 1200병상에 달하는 국내 최대 정신 의료기관이기도 하다.

2019년 조 원장은 임명과 함께 병원 산하에 법정신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법정신의학회도 출범했다. 국내엔 다소 생소한 세부 분과인 ‘법정신의학’, 즉 범법 심신장애인에 대한 효과적인 감호와 치료 방안, 범죄 특성과 발생 원인, 예방 방안 등을 분석하고 관련 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학회는 최근의 상황을 반영해 오는 9월 22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진행하는 추계 학술대회에서 정신질환과 범죄의 실질적인 관계성을 재차 검토하고 진료 현장과 사법 집행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치료·예방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 원장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흉악범죄를 모두 정신질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문제를 악화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결코 묻지마 칼부림 등 일련의 흉악범죄가 정신질환 탓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볼 순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기방어조차 어려운 정신질환자, 사실은 안전한 사람”

조 원장은 법정신의학적으로 ‘정신적 어려움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진술 자체가 “단지 ‘핑계일 뿐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피의자 스스로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한단 증거”라면서 “이는 곧 자신의 범죄에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의 판단력도 유지하고 있다는 근거”라고 강조했다.

반면, “법적으로 감형이나 치료 감호의 필요성을 인정받는 수준의 환자는 본인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조 원장은 지적한다. 이를 정신건강의학적으론 ‘병식’이라고 부른다. 병식은 가장 중증의 정신질환 단계인 ‘(정신)병적 질환’을 구분하는 가장 핵심적인 증상이다.

쉽게 말하자면, 타인이 봤을 때 분명히 병이 있지만, 스스로는 병이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현실 감각과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청과 환각, 피해·과대망상 증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단계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사진은 2019년 법무부 국립법무병원 부설 법정신의학연구소 설립 기념 현판식 당시의 모습. 법정신의학연구소는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효과적인 감호와 치료 방안을 연구하고 관련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조 원장이 취임 당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해 설립했다. [사진=법무부]
조 원장은 중증 정신질환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대체로 관련 범죄가 ‘자기방어’의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이들 범죄의 3분의 2는 환청과 환각, 피해·과대망상 증상을 현실로 착각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가상의 무언가가 목숨을 위협한다는 환청과 환각, 망상을 실제 현실이라고 믿고 이에 대응하고 방어하려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나머지 3분의 1일은 특정 자극에 반응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죄다. 대부분 경우에는 ‘이게 동기라고?’와 같은 의문이 들 정도로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들이다.

조 원장은 중증 정신질환자는 오히려 자기방어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치료가 안된 극히 일부라고 강조했다.

“중증 정신질환은 폭력성으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외부의 불특정 대상에 폭력성을 투영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뭅니다. 자기방어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기에 외부의 폭력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합니다. 중증 정신질환이 만성화하면 자아가 약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환자 대부분이 평소엔 주변으로부터 멸시와 소외,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못하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로도 국내외 모두에서 정신질환자가 더 많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정확히 따져보면 치료가 안 된 극히 일부의 환자가 자신의 질환에 대한 인식과 판단력, 제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중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안전한 사람’인데도 환자 전체가 ‘도매금’으로 ‘위험한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오해가 매우 안타깝습니다.”

“궁극적 치료는 사회적 포용과 대인관계 신뢰 회복”

조 원장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이들 범죄를 확실하게 예방하는 방법인 ‘치료’에 사회가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픈 사람에게 ‘왜 아프냐’고 비난하며 사회와 격리해 가두고 벌을 준다고 병이 저절로 치료됩니까?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처벌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치료해야 합니다. 상당수의 환자는 입원과 치료를 통해 당장이라도 상태가 좋아질 사람들입니다. 이를 방치해 사회적 상황도, 중증 환자의 상태도 악화하고 있습니다.

병식이 없던 중증 환자가 치료로 병식만 생긴다면 이미 병의 50%는 치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만 돼도 환청과 환각, 망상 증상을 현실과 구분할 수 있고 판단 능력도 회복해 자기 행동을 제어하고 사회 속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확실한 예방책이 없습니다.”

다만 현재 정신건강 보건·의료체계에선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제대로 관리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조 원장은 비판했다. 정신질환자의 ‘비자발적 보호입원’ 절차를 복잡하게 전환한 데다, 환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지역사회의 공공 정신보건 인프라는 여전히 척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 원장은 적절한 관리와 치료 방안으로 △비자발적 보호입원 등 사법입원 절차 도입과 △환자의 사회성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전(全)단계 회복 치료 확대 등을 제언했다.

물론 사법입원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전문가 그룹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권한을 위임받아 이들 환자의 치료를 공공에서 책임지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증 정도와 치료의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는 법정신의학 전문의 등의 전문가 그룹을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단계 회복 치료법은 약물 치료를 넘어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대인관계 회복과 사회적 통합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직업 교육, 대인관계 회복 치료, 음악, 미술 치료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조 원장은 이같은 시스템이 갖춰져야 정신질환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훨씬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 일부가 병든 것일 뿐 환자의 전체 부분이나 ‘사람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치료는 환자가 스스로 질환을 관리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병든 부분(증상)을 도려내기 위해 치료가 환자를 고립시키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능성을 가로막는다면, 환자는 언제든지 치료를 중단하고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집니다. 반대로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할 때에야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려는 의지’,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의지’도 갖게 됩니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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