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못 잡아내는 건강 검진, 왜 받으라는 거요?”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건강 검진과 맞춤 건강관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는 10여 년 전, 지방 도시의 대학 교직원으로 취업했다. 그 대학에는 부속병원이 있었기에 교직원들의 직계 가족과 부모에게 종합 검진 비용을 30% 가까이 할인해 주는 혜택이 있었다.

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70세)와 어머니(65세)를 모셔와 1박2일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검진을 받게 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다시피하는 초특급 검진이었다. 부모님에게 그러한 정밀 검사는 생전 처음이었다. 약 보름 뒤 결과가 나왔다. “두 분 모두 양호합니다. 매우 건강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면서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딱히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언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늘 걸어 다녔다.

A는 노부모가 최소 20년은 더 그렇게 건강하게 살 것이라 안심했다. 허나, 석 달 후 아버지가 사망했다. 병명은 췌장암이었다.

2021년 6월 국가대표 출신으로 월드컵 4강 신화의 기둥이었고 이강인을 길러낸 유상철이 췌장암 탓에 사망한 사건은 온 국민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주었다.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우리나라에서는 약 25만 명의 암 환자가 새로 생긴다.

그 중 췌장암 환자는 8000명이 넘으며 2019년엔 전체 암 환자의 3.18%를 차지해 8위를 기록했다. 췌장암은 차지하는 비율은 낮지만 조기 발견이 어렵고 확립된 예방 수칙이 없어 위험도가 높은 질병이다. 흡연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지만, 평생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우지 않은 사람이 췌장암 진단을 받기도 한다.

장례식을 치르고 두어 달 뒤 A는 직장을 옮겼고, 그 이후로 종합 검진을 거부했다. 아내의 성화로 마지못해 3년에 1회 정도 받지만, 결과 통보서가 오면 그저 흘깃 볼 뿐이다.

“그 통보서에 쓰여 있는 글귀는 늘 똑같아요. 과음하지 마라. 담배를 끊어라. 스트레스를 받지 마라. 운동을 하라. 도대체 그걸 누가 모르나요!”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게 한다. 모자보건법에 따른 영유아에 대한 건강 검진, 학교보건법에 따른 초·중·고등학교 학생의 건강 검사, 국민건강 보험법에 따른 건강 검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일반 건강 진단 등 종류도 다양하다. 건강 검진 조항이 많은 이유는 모든 국민이 받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받기는 하되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많다. 실제 병원에 와서 “내가 건강 검진을 해마다 받았는데, 늘 아무 이상 없다고 소견이 나왔어요. 그런데 내가 암에 걸렸다니!”라면서 마구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암도 못 잡아내는 건강 검진을 도대체 왜 받으라는 거요!”

환자의 분노와 질타는 고스란히 상담 의사의 몫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건강 검진이 사람 몸에 있는 이상 징후를 모두 잡아내지는 못한다. 해마다 정기 검진을 받아 오던 의사 가족 중 아내가 암에 걸려 55세에 사망하는 등의 소식은 항상 들린다. 그래서 ‘죽음은 결국 팔자소관’이라는 운명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운명론을 신봉한다고 해도 건강 검진은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검진을 받는 병원이 어딘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회사원이라면 회사에서 지정하는 검진 센터에서 받으면 되고,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집에서 가까운 곳의 병원에서 받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과정이다. 건강 검진 소견서가 나오면 누구에게 판독을 맡길 것인가이다. 주치의를 정해 놓고 매년(혹은 2년에 1번) 그에게서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주치의는 환자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파악하게 되고 적시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다. 십수 년에 걸친 생활 습관, 식습관, 가족력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므로 건강의 변화 상태를 비교적 정확히 알게 된다. 즉 모든 가족에게 주치의가 1명씩 붙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의학, 의술 수준은 현재 최상등급이다. 의료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수술, 치료,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는데, 가족 주치의 제도를 통해 검진 결과를 보다 세밀하게 설명하고 관리하게 해서, 건강 검진을 가족 단위 케어 시스템으로 연계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적극적 해외 환자 유치를 통해 비용을 차별화하고 국내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등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미래의 병원에서는 내·외국인에 상관없이 적용 가능한 정확하고 광범위한 건강 검진 프로그램을 만들고, 결과의 해석은 주치의가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전 국민의 질병 치료와 예방, 건강 증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앞으로 건강 검진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자 검사이다. 건강 검진이 형식적이고 루틴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각 개인에 맞는 개별화가 이뤄져야 한다. 가족력을 포함해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면 그 가족의 현재 건강 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상 징후가 보이면 식습관, 생활 습관을 바탕으로 어느 곳에 왜 이상 징후가 나타났는지 알 수 있다.

한 명의 의사가 한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수십 년 동안 관찰하면서 그 가족의 일원이 되는 셈이다. 질병 증상이 보이면 개선할 점을 찾아내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 질병의 조기 발견에는 현재 검진만큼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A는 그날 이후 건강 검진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들려주면서 “검진받으러 가면 몸무게 재고, 혈압 재고, 피 검사를 하고, 소변 검사를 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 몸은 내가 잘 압니다. 평소에 잘 먹고, 잘 자면 됩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판단자가 된다.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했는데 병에 걸려 갑자기 사망한 사람이 주변에 가끔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사람의 장례식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건강 검진의 형식성을 탓한다.

그러나 의사로서 가장 안타깝고 환자에게도 가장 후회되는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그랬어요”라는 말을 하게 되거나 듣는 것이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말을 듣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단 1년, 혹은 2년 동안 건강 검진을 받지 않아서 치명적 질병을 놓친다. 그 한두 번의 누락이 환자와 가족을 오랫동안 괴롭힌다. 일찍 발견했으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병에 걸려 7~8년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가 세상과 작별하다니!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병상에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정기적 건강 검진, 개별화된 검진, 주치의의 정성스러운 판정을 받는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나라 미래 병원의 품질과 높은 의술 및 유전체 빅데이터를 통해 한국형 질병의 조기 발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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