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 품질 얘기하면 욕먹은 까닭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31)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교육훈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77년에 국민소득 1000달러 목표가 달성됐고, 당연 적용 의료보험이 출범했다. 의료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공급도 따라서 증가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 의식의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80년대에는 아프면 약국이나 약방을 드나들던 시대에서 병의원에 진료받으러 가는 시대로 진입했다. 1977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개교했는데, 병원행정 교육훈련에 우선순위를 뒀다. 당시에는 병원경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병원행정이라 했는데, 1980년 즈음해서 병원장들이 병원경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1980년 대한병원협회 회장으로 조운해 고려병원장이 선출됐다. 병원협회 사업으로 전공의 수련병원 신임제도를 채택했다. 이를 위해 지침서가 필요하므로 협회 부회장인 김영언 인천도립병원장이 미국병원협회 수련병원신임위원단(JCAH)애서 발행한 매뉴얼을 번역해 하호욱 병원협회 사무국장과 함께 필자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번역한 책자를 검토 요청하기에 세밀히 수정 보완했고, 미국 의료제도에 관한 추가 설명을 붙였다.

필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의료서비스 질 관리(Quality Assurance, QA), 병원관리 등 관련 과목들을 수강했으며, 3개월 여름방학 때에는 지도교수에게 추천을 받아 미국의 여러 병원과 의료보험 관련 기관 등을 방문해 샅샅이 살펴본 경험이 있다.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듬해인 1982년 2월 연세대 의대 교수수양회에서 특강을 요청받고 의료의 질 향상에 대해 강의했다. 대부분이 선배 교수였는데, 특강에 대한 교수들의 눈길이 부드럽지 않게 느껴졌다. 어떤 교수가 “의료 질을 강조하면 의사들에게 문제가 될 것 아니냐”고 꾸짖 듯 질문했다. 이후 의료의 질에 관련해서 언급할 때와 글을 쓸 때에는 신경을 썼다.

그러나 병원 의료서비스의 향상은 외면할 수 없는 과제였다. 여러 병원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다. 우복희 이화의료원 원장의 요청으로 경북 문경 이대수양관에서 열린 교수수양회에서 강의했고 국립중앙의료원 주양자 원장의 요청으로 임직원 수련회에서 특강했다. 인제의료원 백낙환 이사장의 요청으로 서울백병원에서 임직원 모임이 있을 때 병원경영, 의료보험, 의료의 질 관리에 관하여 잇따라 특강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는 1986년 3월부터 5월까지 주말 피정 때 6번이나 병원장, 중간관리자, 교수 등을 대상으로 특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 질 평가 부서에 있던 최규옥 과장과 민인순 간호사와 종종 만나서 QA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의료계에서 QA를 “적정진료”라고 하였기에 필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적정, 적절, 적합이라는 용어를 잘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정(Optimum)은 단일한 것을 의미하고, 적합(Adequacy)는 양자가 맞는 것을 뜻한다. 적절(Appropriateness)은 두루두루 맞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료서비스는 적절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 필자는 “양질의 의료관리” 또는 “의료의 질 향상”이라고 하였다. 관련 책을 저술하기에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세브란스병원 부원장 재직 때, 박인용 원장 등이 의료의 질 관련 책을 쓰라고 권유하기에 1992년에 《양질의 의료관리》를 출판했다.

병원협회 회장을 지낸 조운해 고려병원장을 비롯해 노경병, 한두진, 백낙환 등 역대 협회장들이 종종 불러서 협회 연차종회 때 특강 또는 주제발표를 하게 했다. 1986년 아시아병원연맹 연차 학술대회가 타이페이에서 개최되었을 때에는 필자가 주제발표를 하도록 했다. 여행비용은 병원협회에서 부담했다.

병원 규모가 증대되기에 중간간부가 필요하게 됐다.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야간에 운영되는데, 입학하려는 병원근무자가 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도 입학했다. 재학생들은 병원행정 관련 과목들을 이수하고, 여름방학에는 주말에 병원행정 실습을 하였다. 1990년대 증반에 들어서는 여름방학에 4박5일로 일본을 비롯해 해외 병원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병원경영 관련, 여러 선배 의사들과 관계를 가졌다. 그 중에서 두 분은 특출했다. 1985년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을 건립할 때 민병철 원장이 필자와 신영수 서울대 의대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신영수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연수하고 귀국,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냈으며 나중에 대한예방의학회 회장, 한국의료QA학회 회장,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민 원장은 필자에게 종종 전화를 했고, 만나면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병원이 개원해서 원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10년 동안 음주를 즐기는 민 원장과 대작하며 자문했는데, 자문위원비는 전혀 받지 않았다.

백낙환 이사장은 서울 중구 저동 서울백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종종 필자를 불렀다. 병원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와 맥주 한 컵을 할 뿐이다. 그리고는 사무실에 돌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인제대 의대와 보건대학원이 부산에 개교했는데, 특강 요청이 있을 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하면 이사장이 직접 필자에게 전화해서 확답을 받아냈다.

백 이사장은 1995년 병원경영학회를 만들고 본인이 초대 회장을 맡을 터이니, 필자더러 부회장을 하라고 했다. 필자보다 선임자들이 있기에 사양했지만, 끝내 승낙하게 되었고, 필자가 후임 회장이 되었다. 병원경영 관련 학회는 병원협회가 발족하면서 정관에 학회를 둔다고 하였기에 1968년에 병원관리학회를 만들었으나, 운영이 되지 않았다. 1983년에 (가칭) 병원관리학회 모임을 가졌지만 진행되지 않았다.

한편 1985년 병원근무자들의 모임인 병원관리자협회가 설립됐다. 이 협회 이종길 초대 회장은 세브란스병원 행정부원장을 지냈고 1981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병원행정 전공으로 보건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협회가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병원직원 연수교육과 직무교육을 실시했으며, 국가공인 병원행정사 자격시험제도를 시행했다.

    유승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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