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간병, 며느리에서 딸로.. 아들은?

[김용의 헬스앤]

간병·돌봄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역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뇌졸중·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어머니를 10년 동안 돌 본 중년의 형제 얘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병세가 심해 몸의 마비에 언어·시력 장애도 갖고 있었고 치매까지 와 간병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형은 정년퇴직하고 동생은 자영업을 하고 있어 번갈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직업 간병인도 썼는데 비용은 어머님이 남긴 조그만 집 한 채로 충당했다. 간병비가 월 400만원 이상 들어갈 때도 많아  부족하면 형제가 공동 부담했다.

간병, 돌봄 문제는 이 글에서 자주 다뤘지만 ‘누가 할 것인가?’가 언제나 핵심 이슈였다. 요즘은 아들, 딸들이 각자의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처럼 며느리가 병든 시부모를 모시는 미담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시댁, 처가의 개념을 떠나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온 딸, 아들이 부모를 간병하는 게 옳다. 노부모의 지병은 대부분 80세가 넘어 악화되기 때문에 퇴직한 아들도 충분히 돌볼 수 있다.

최근 아들 선호 현상이 퇴조하고 딸을 더 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이 들어 투병 생활을 할 때 아들보다 딸이 더 잘 돌봐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아들이 대를 잇거나 부모 부양 의식이 점차 옅어지면서 “내가 아프면 누가 옆에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들보다는 딸이 더 낫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노부모와 함께 사는 아들 부부가 많았지만 요즘은 여유만 있으면 따로 사는 게 대세다. 아들이 분가하면 노부부만 남기 때문에 아프면 ’노노 간병‘을 피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간병을 주로 하는 사람은 2011년 배우자-며느리-아들-딸 순에서, 2020년에는 배우자-딸-아들-며느리 순으로 바뀌었다. 10년 새 며느리는 뒤로 빠지고 딸, 아들이 전면에 나서 부모를 간병하는 시대가 됐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은 딸이 가장 많았다는 논문도 있다. 한양대 임상간호대학원 김다미 석사 논문에 따르면 치매 노인을 간병하는 가족은 딸이 43.4%를 차지했다. 며느리는 16.8%였다. 이어 아들 15.2%, 배우자 12.0% 순이었다. 간병인은 여성이 82.4%로 압도적이었고 나이대는 50대 이상이 36.8%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 33.6%, 30대 이하 29.6%의 순이었다. 이는 지난해 8~9월 서울·경기 등 의 치매안심센터 등록 치매 노인을 집에서 돌보는 가족 주부양자 12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간병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 대규모-소규모 조사 가릴 것 없이 확인된다. 다만 며느리에서 딸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문제는 간병하는 사람의 나이가 주로 40대 후반~50대라는 점이다. 갱년기 증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본인도 한창 힘들 시기에 간병까지 떠안은 것이다. ’간병‘이란 말만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

가족을 돌보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을 얻으면 장기요양보험에서 월 30만~65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6월 가족을 간병한 요양보호사가 9만4520명으로 환자의 딸이 40.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여성 배우자(28.5%), 며느리(15%), 남편(6%), 아들(5.1%) 순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집에서 생활이 가능한 환자를 선정해 최대 2년간 의료, 돌봄, 식사, 이동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오는 7월부터 ’재가 의료급여 시범사업‘을 80개 시·군·구로 늘려 다음달 21일까지 신규 참여 지방자치단체를 공모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2019년 전국 13개 기초 지자체에서 1차 시범사업이 시작된 후 현재 38개 지자체에서 운영 중이다.

간병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직장마저 그만두고 간병에 매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치매 환자를 돌보다가 순간적인 격정과 분노에 휩싸이고, 간병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족들도 많다. 장기간 간병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우울감,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것이다.

이제 간병, 돌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회, 정부, 지역사회가 다 함께 풀어야 할 중요한 당면 과제다. 노인장기요양제도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 기존 정책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 간병도 치매나 암처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10년 간 치매 노모를 돌본 아들은 “간병도 힘들지만 건강할 때 단아했던 어머니의 참혹한 모습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나는 나이 들면 얼마나 앓다가 죽을까? 나도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간병, 돌봄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나에게 닥치고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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