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들의 생명 의료 기피, 진짜 이유는?

[박문일의 생명여행] (44)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응급의료법

생명 구하다 잘못되면 처벌받는데 누가 필수의료 지원할까
젊은 의사들이 의료사고 위험이 있는 진료과를 기피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떤 시민이 길을 가는데 다른 사람이 길에 쓰러지는 위급한 상황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적극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상황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자기의 일이 아니면 어떤 상황이라도 관여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도움을 주겠지하는 마음만 가진 채 방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태원 참사에서도 보았다시피 다른 사람의 응급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한다. 높아진 시민공동체의식이 주로 그 이유겠지만, 아마도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논의됐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영향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별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관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이는 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 30~37절에서 유래했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부상을 입고 길가에 버려졌는데, 당시 사회 상류층이었던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모른 척 지나쳤지만, 오히려 유대인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 구조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그 사마리아인은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줄 의무는 없었지만 도덕적 차원에서 구해준 것이고, 그냥 지나친 유대인들은 도덕적 비난은 있을지 몰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독일, 호주,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반인륜적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물론이고, 전체 사회적 도리이자 의무로 간주한 것이다.

즉,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사람이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인간의 양심을 외면하는 도덕적인 범죄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이 논의됐으나 무산되었다.

이 법이 시행되고 있는 일부 선진국은 긍정적인 선례를 많이 남기고 있다, 사회적으로 공동체 의식에도 좋은 영향을 많이 남겨 숱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어도 최소한의 응급신고,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선행도 하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법을 찬성하고 있고 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의 근거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아직 이 법이 제정되지 않은 이유이다. 즉,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까지 법의 잣대로 규제가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도덕이란 인간의 자율성인데 이를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개인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하며, 법과 도덕은 별개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법이 도덕성을 침해하면 법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약칭 응급의료법)’을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 법을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응급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응급상황에서 시행한 구조행위에서 발생한 후유증에 대하여 책임을 면제해주는 법이다. 즉, 위급하게 생명을 살리려는 응급 처치 중 발생할 수 있는 손해들(예를 들면 심폐소생술 중 갈비뼈 골절) 또는 응급구조 후 사망했다고 했더라도 이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이 없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면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응급의료법의 해당내용인 제2장 제5조의 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요약하면, ‘착한 사마리안 법’과 위의 우리나라 ‘응급의료법’은 사실 다른 내용이다. 전자는 응급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내용이고, 후자는 응급상황 개입 후 발생하는 환자의 손해에 대하여 면책해주는 법이다.

이런 법이 있어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응급구조 행위였더라도 법원이 판단해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이유로 환자에게 손상이 남는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처벌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의료인이라고 해도 응급환자에게 적극 개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는 의료인에게 쉽게 의료과실이라는 책임을 지우는 풍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11월에 의료정책연구원의 토론회가 열렸는데, 그 당시 발표된 자료들을 보자. 의료과실을 다투기 위한 의료소송이 2012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으며, 의사가 유죄를 받는 비율 또한 높아졌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유죄로 선고되는 판례는 66%로, 무죄로 선고되는 34%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또한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 김해영 법제이사는 “인권에 대해 의식이 있는 법조인들은 의사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젊은 판사들은 피해자가 입은 악결과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며 “의료에 대해 100% 책임 인정하고, 법정구속을 남발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니 의료인들마저 자신이 정당하게 행한 선의의 의료행위에 있어 책임이 가중되고 있는것이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다면 선뜻 응급구호에 나설까 하는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면책을 해준다고 법에 제정되어 있지만, 법원의 판단으로 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이 이태원참사에서 보여준 구호활동으로 여러 사람들이 귀한 목숨을 보존하였다.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면 처벌받을 수도 있는 것을 알았든지, 또는 몰랐든지 간에 아무튼 그 구호활동은 필요한 것이었고, 적절한 것이었다. 책임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구호활동을 했다면 진정 용감한 시민들이었다. 당시 구호를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한 본 시민들도 많았다는데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 신문기사도 보았다.

그러나 어찌 그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작금 우리 사회는 의료인들도 환자의 위급한 상황에 개입하면 자칫 책임이 돌아오기 마련인 의료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니 생명을 다루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등의 소위 메이져(Major) 필수 의료 과목의 전문의 지망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하는지? 또는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한 의료인 또는 일반인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진정 착한 토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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