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정말 충분히 설명해 주세요

서상수의 법창 & 의창

작년 우리 사회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존엄사’에 관하여 많은

논의를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2008년 2월 병원에서 폐 조직검사를 받다가 출혈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할머니(당시 76세)씨의 자녀들이 “평소 어머니는 존엄스런 죽음을 원했다”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 2심에서는 환자의 상태와 존엄사를 인정하기 위한 기준, 존엄사 판단 주체

등이 주요 쟁점이 됐다. 1, 2심은 환자의 의사표시를 추정할 수 있다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각각 내렸다.

병원 측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작년 5월 21일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대법관 13명 가운데 9명의 다수

의견으로 확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를 인정한 판례가 최초로 확립된 것이다.

이 판결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인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환자는 단순히 의료행위의 객체가 아니라 죽음의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임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의료행위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근거와 의미에 관해 명백히 판결

했다는 점도 시사점이 많다.

의료행위는 환자의 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다른 직업 활동보다 훨씬 더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로 인식된다. 의학적 지식과 경험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전문적이고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래서 의료행위 과정에서

의사들의 절대적인 권위가 형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환자와 보호자는 진단, 치료 등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의사의 설명이나

지시에 따라 약을 먹고 수술을 받고 생활습관을 바꾸려고 애쓴다.

하지만 제대로 설명받지도 못한 채 의사가 전문가라는 이유 만으로 무조건 의사의

지시에 따라 맹목적으로 자기 생명에 관계된 선택과 행동을 한다는 것은 법이론을

말하지 않더라도 매우 중대한 문제다. 의사는 환자에게 자기 의료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바탕으로 진료방법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은 환자가 자기 생명에 관계된 사항에 대해 주체적인 결정을 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다시 말해 ‘의사의 설명의무’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다. 환자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양보할 수 없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인

것이다.

대법원은 김 할머니 사건에서 “어떤 진료행위에 대해 환자가 동의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해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행위”라며

“환자가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므로

의료계약으로 제공되는 진료 내용은 의료인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에 의해 구체화된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의사에게 주어진 설명의무는 단순히 환자에 대한 배려나 시혜(施惠)에

그칠 수 없다. 오히려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환자에 대해 의사가

반드시 그리고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인 것이다. 이는 또 의료행위의 적정성(適正性)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임상현실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설명의무를 이행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코메디닷컴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