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사 Vs 과학준칙

10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앞 영존빌딩 12층 회의실.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자신이 개발한 ‘카바(CARVAR, 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

성형) 수술’의 치명적 문제점을 지적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허대석, 보건연)의

보고서 내용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 교수는 인제대 서울백병원 흉부외과

김용인 교수와 ‘송명근 교수의 카바 수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송카사모)’

지형식 회장 등을 대동하고 기자 20명에게 보고서의 부당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송 교수는 보건연의 조사에 대해 “터무니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기”라고 비난했다.

그는 보건연의 분석에 문제가 있다며 수치를 열거하면서 카바 수술이 기존 수술법보다

사망률 뿐 아니라 부작용 정도에서 월등히 낮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보건연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진료를 방해하는 배후에는 자본이 개입됐다고 구체적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코메디닷컴과 동아일보, SBS 등의

기자들은 음흉한 배후 세력에 아무 생각 없이 이용당하거나 동조한 셈이 된다. 이날

대한흉부외과학회와 대한심장학회도 “보건연의 조사결과를 신뢰하고 수술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는 의견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도 검은 그림자가 있다는 얘기다.

보건연은 정부가 치료법,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초대 원장인 허대석 서울대 교수는 종양내과의 대가로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 치료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 의사로 유명하다. 이러한 기관에서 왜

송 교수를 해코지하는 조사결과를 내놓았을까?

의학적으로 봐서는 이번 보고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송 교수에게 카바 수술을 받은 환자 397명 가운데 15명이 사망했고, 절반

이상인 202명에게 부작용이 발견됐다. 송 교수는 카바 수술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단 한 건의 사망사고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수술 부작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일부 언론은 ‘국민의사

송 교수’와 이를 시기하는 집단 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한 언론사는

‘송명근 교수, 보건연 언론플레이에 폭발’했다는 제목으로 보건연이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기정사실화했고 또 다른 언론은 ‘보건연, 왜곡된 자료로 송명근 교수 카바

수술에 딴지’란 제목으로 보건연을 질타했다.

그러나 굳이 ‘대결’이라는 이름을 붙이자면 이 문제는 송 교수와 보건연의 대결이

아니라, 스타 의사와 과학의 대결이 더 맞는 듯하다.

카바 수술은 판막과 대동맥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기존 수술법과는 달리 한

번 수술받으면 영구적으로 재수술이 필요없고 항응고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기적의

수술’로 언론의 조명을 받아오고 있는 수술이다. 그러나 송 교수가 재직하고 있던

서울아산병원 의사들은 물론, 다른 병원 의사들도 수술법의 안정성 문제를 제기했고

송 교수가 속한 대한흉부외과학회는 수술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송

교수 주장대로라면 이들 모두 ‘검은 손’ 때문에 세계적 대가에 반대하는 셈이 된다.

송 교수는 동료 의사들이 치료법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자료의 공개를 요구했을

때 국익과 노벨상 등을 내세우며 이를 거부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해왔다.

특히 흉부외과학회에서 수술법이 도마에 오르자 자신이 카바 수술로 큰돈을 벌면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돼 갔고, 현대 승용차 제네시스의 1호 주인이

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송 교수에 대한 기사를 보고 환자들이 몰려왔다.

이 와중에 송 교수가 근무하는 건국대병원의 심장내과 교수들이 카바 수술법 부작용

사례를 식약청에 보고하고 유럽흉부외과학회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저자들은

조직의 화합을 깼다는 이유로 대학교로부터 해임 통보돼 학계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한심장학회, 대한고혈압학회, 한국심초음파학회 등 관련학회에서도 수술의

중단을 권고했다. 특히 대한심장학회는 자체적으로 카바 수술 관련 논문과 수술에

대해 조사한 결과보고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선진국에서는 의학계가 한목소리로 문제를 삼고 있는 수술법이 시행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이런 데도 많은 언론이 ‘선택적 보도’로 송 교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국민들이 송 교수를 본받아야 한다고 ‘감동의 노래’를

불렀으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서일까.

보건복지부의 행태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왜 보건연을 왜 만들었나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하지 않았나? 올해 2월 보건연은 복지부에

송 교수의 수술법을 잠정 중단해달라는 중간 보고서를 제출했다. 흉부외과 심장내과

실무위원 11명으로 구성된 ‘카바 수술 실무위원회’는 10대 1의 압도적인 표차로

‘수술 잠정중단’을 결정했다. 송 교수는 당시에도 선택적 미디어 플레이로 이슈를

피해갔고,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논리로 ‘대결 구도’를 조성하고 있다. 건국대병원과

송 교수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는 동안 환자들은 ‘만일의 위험’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타 과학자, 권위자라고 해도 과학의 준칙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은 제3자의 검증과 재연이라는 틀이다.

노벨상을 받은 권위자라고 해도 ‘절대 권위’를 인정받을 수가 없으며 다른 모든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장을 명확한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은 과학의

불문율이다.  송 교수의 주장은 동료 과학자의 검증과 인증에서 실패했다는

점에서 ‘나홀로 주장’일 뿐이다.

송 교수도 ‘검증’을 이유로 동료 의사의 수술을 중지시킨 전력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재직 시절 같은 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가 당시 수술로만 치료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협심증 환자를 내과적 시술로 치료하자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이 시술은 생사람

잡는 것이니까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고 훼방을 놓았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6개월

동안 이 시술을 할 수가 없었다. 박 교수는 미국심장학회지(JACC)에 이 시술과 관련한

논문이 실려서 다시 시술대에 설 수가 있었다. 박 교수는 이 시술이 기존 외과수술

못지않게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해 인용지수가 ‘사이언스’나 ‘네이처’보다 훨씬

높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매디신(NEJM)’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NEJM에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한 유일무이한 한국인 의사로 매년 개최하는 국제학회에는 세계 각국의

대가들이 몰려온다.

그렇다면 송 교수도 동료의사들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자신만의 수술’을 멈추고

기다리는 것이 옳다. 과학은 일반인이 착각하는 것처럼 ‘독불장군’이나 ‘하늘에서

내린 천재’가 이끄는 학문이 아니다. 과학은 기존 연구 성과에 싹을 뿌리고 ‘피어

리뷰(Peer Review.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과 평가)’라는 양분을 통해 성장한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의학 분야에서 의학자의 오만과 독선은 끔찍한 재앙을 불러들일 위험이

있다.

송 교수는 동료의 반대에 부딪히면 기자들을 부를 것이 아니라, 논문을 통해 카바

수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나서 수술에 나서면 된다. 송 교수를

열심히 대변하고 있는 일부 언론은 대한민국 의료 전문가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작태에서 벗어나서 과학의 근본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고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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