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시대에 만난 ‘소통 부재’



 대학생 신분으로 1980년대를 지나온 이들에게 참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자욱한 최루가스와 살벌한 화염병이 뒤섞인 캠퍼스입니다. 교문을 사이에 두고 나가려는 쪽과 막는 쪽이 부딪쳐 만드는 긴장은 무시무시한 공포를 만들곤 했습니다. 간혹 캠퍼스를 벗어나 시내 거리에서 부딪치기도 합니다. 긴장이 사뭇 더했지요.

시민들은 ‘데모(demostration)’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요. 우리말로 풀어서 시위 또는 집회라고 합니다. 수업이 집중돼 많은 학생들의 참여가 가능했던 월, 수, 금요일에는 거의 빠짐 없이 데모가 있었습니다.

기억 속 풍경을 스케치하면 이렇습니다. 학교 안 넓은 공간에 학생들이 데모에 참여하기 위해 모입니다. 대개 학생회관 앞입니다. 손에는 당일 데모의 이유와 취지가 열거된 전단지가 쥐어져 있습니다. ‘~는 물러가라’ ‘~를 처단하라’ 등으로 끝나는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문구들이 대부분이지요.

바닥에 앉아 약속된 율동에 맞춰 운동가를 목청껏 함께 부릅니다. 이어 상당수 학생들이 운집하면, 주최측 대표급 인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전단지를 낭독한 후, ‘~는 물러가라’의 ‘~’을 비장한 억양으로 성토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모두 일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스크럼을 짠다고 하지요). 6~8열 종대로 대오를 만들어 교문으로 향합니다. 전단지에 적힌 문구를 누군가 선창하면, 나머지는 따라 외칩니다. 교문으로 가기 전, 분위기 고조와 참여 독려를 위해 캠퍼스를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교문이 가까워지면서 목소리는 더욱 높아집니다.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퍼엉~퍼엉~’ ‘빠빠빠빠…앙~’. 굉음과 함께 최루가스가 교문 언저리를 뒤덮습니다. 이어 스크럼을 푼 학생들의 돌멩이 투석과 이들의 교문 밖 진출을 막으려는 전경들의 최루탄 발사가 반복되면서 캠퍼스는 아수라장이 됩니다. 해질 무렵, 눈물 콧물이 학생들의 얼굴 위에서 엉켜 마릅니다. 족히 3~4 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정렬해 있던 전경들도 다리가 풀리며 지쳐갑니다.

도망가는 학생과 잡으려는 전경들의 달음박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데모는 끝납니다.

데모를 했든 안 했든, "하라는 공부는 않고 학생들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학생들이라도 나서야지…"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왜 했을까요. 곁가지를 빼고 나면 ‘말길(言路)’이 막혔기 때문으로 요약됩니다.

‘~는 물러가라’ 속 ‘~’쪽 말은 길이 많았던 까닭에 잘도 들립니다. 하지만 ‘~는 물러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말길이 없었지요. 말길이 없어 말문이 막히니, 전단지 들고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소통을 향한 외침’이라고 할까요.

21세기를 가리켜 IT시대라고 하지요. IT가 인류에게 안긴 가장 큰 선물은 ‘소통’이라고 합니다. IT의 산물 중 인터넷은 단연 돋보입니다. 세계 인터넷 사용자 수가 13억 명입니다. 우리나라만 3400만 명에 이릅니다. 정보유통에서 경제활동, 그리고 사적 교감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매개하지 않은 무엇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지요. 인터넷이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키워드로 자리잡은 지 10년입니다.

IT시대, 소통의 만개를 꿈꿨습니다. 특별히, IT강국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대한민국이 지닌 꿈은 더욱 야무졌지요. 만개한 소통을 기반으로 국가자산 중 최고로 꼽히는 ‘국민공감대 형성’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갈 것이라는 꿈이었습니다.

지나친 낙관이었을까요. 광화문에 청계천에…, 몸으로 소통을 외치는 사람들이 자주 모입니다. ‘소통의 문제’를 인식했다는 쪽의 행태가 포털게시판 삭제나 네티즌에 대한 제재 같은 시대착오적 수준이라면 당연합니다. 전단지와 촛불 들고 밖으로 나오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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