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온몸마비 환자, 추가배상 못 받은 까닭

[서상수의 의료&법]기대여명과 추가배상 소멸시효

환자 A씨는 2002년 수술을 받다가 심각한 의료사고가 발생해 온몸이 마비됐다. 영구장애인 상태로 앞으로 5년밖에 더 살 수가 없다는 신체감정결과에 따라 의료사고를 일으킨 병원이 가입한 손해보험회사인 B사로부터 3억3000여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받았다. 그런데 환자 A씨는 5년의 기대여명을 넘겨 계속 살았고, 이에 2012년경 B사를 상대로 5억9000만원의 추가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에서 주요 쟁점은 환자 A씨가 기대여명을 넘겨 계속 생존함으로써 입원 및 진료비 등의 손해가 예상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추가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언제부터로 잡아야할까?

‘소멸시효’란 누군가 특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을 때 그 법적 권리를 없애는 것이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로부터 진행하고,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채무불이행 시부터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2005.1.14. 선고 2002다57119 판결 등). 물론,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므로,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어야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또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춰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8. 11. 9. 선고 2018다240462 판결 등)는 것이 소멸시효가 시작하는 때(기산점)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기본적 입장이다.

위 사건에서 1심은 “기대여명 종료일 다음날부터 추가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봐서 2012년 소제기 당시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면서 환자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은 환자 A씨는 이전의 감정결과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여명종료 예정일을 초과해 상당한 기간 생존할 것이란 점을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해 환자 A씨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환자 A씨는 기대여명이 지났을 때 앞으로 새로 발생할 손해를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봐서 그때부터 추가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판단,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환자가 기대여명을 넘겨 계속 생존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추가손해배상청구는 기대여명이 지난 시점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사건에선 만약 A씨가 2007~2010년 어느 날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B사로부터 추가 배상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컸지만, 이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참고로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는 반드시 재판을 청구한 것에 한하지 않는다. 내용증명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받은 것을 확인하기만 해도 소멸시효가 중단된다.

소멸시효제도의 근본취지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반대 측면에서 보면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위 사안과 같이 권리자가 구체적으로 손해액을 특정하기조차 어려운 상태에서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현실과 떨어진 것이 아닐까? 게다가 의무자의 입장에서도 이 경우 보호받을 만한 신뢰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원칙적으로 권리자의 권리행사 여부 및 시기의 선택 또한 권리자의 권리이다. 소멸시효제도가 잘못 적용되면 권리자의 권리행사가 의무가 되는 결과가 나올 수가 있다.

온몸이 마비돼 오늘내일 생명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과 이를 돌보는 가족에게 “왜, 기대여명보다 더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법의 취지에 부합할까? 혹시 법관이 일반인도 자신처럼 법적 지식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는 사고의 오류에 매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위 대법원 판례는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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