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잡아먹는 숫자 ‘2000’

[박효순의 건강직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증원’ 사태로 불거진 의사들(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전임의·펠로)과 의대생의 이탈 사태가 31일 현재 40일을 넘고 있다. 의대·병원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에 이어 내일(4월 1일)부터 진료를 줄인다. 의료대란의 현실화가 눈앞에 다가왔다.

최근까지 의료계와 정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국민건강의 파탄 위기와 환자들의 고통을 서로에게 책임 지우는 사이, 새내기·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한국 의료에 미래가 없다’며 진료 현장을 벗어나 대화마저 거의 끊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대통령이 총리에게 대화에 나서라고 주문하고, 정부 측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이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숫자 ‘2000’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의료계의 반발은 수그러들 조짐이 없고, 초강성 의협 집행부의 출범과 함께 사태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골든타임이란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말한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심한 외상이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면 치료해서 생명을 살린다 해도 그 후유증이 엄청나게 커서 이후 환자뿐 아니라 가족 및 국가·사회적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동안 골든타임을 지킬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의대 교수들이 정부에 대화를 제안하고, 정부도 각종 의료계 지원 대책을 내놓으며 대화의 장을 여는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핵심 문제는 숫자 ‘2000’인데, 이 숫자가 변하지 않는 한 사태 해결의 돌파구는 거의 없어 보인다.

약 3주 전에 <<코메디닷컴>>은 과거 ‘전공의 사표 파동’을 반추하며 ‘국무총리가 의대 교수·전공의와 대화하라’고 촉구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서 5일 전에는 ‘尹대통령, 젊은의사들과 당장 대화하시라’고 제언했다. 보건의료계 또한 “대통령이 나서야 이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숫자 ‘2000’에 얽매어 시간을 더 끌다가는 대통령이 나서도 해결이 어렵게 될까 큰 걱정이다. ‘2000’이 뭐 그리 중한가? 정부도 의료계도 ‘2000의 독선과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효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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