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남북경쟁 탓 졸속 추진됐다고?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⑭건강보험의 출범과 전개

정부는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76) 실행 전 1980년도 수출목표를 50억 달러로 잡았지만 ‘10월 유신’을 강행하면서 목표를 100억 달러로 올렸다. 전후 패전국에서 급속 성장한 일본을 벤치마킹해서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종합상사들을 출범시킨 데다가, 베트남 전 파병에 따른 경제성장과 중동지역 건설업 진출로 소득증대에 힘쓴 결과 1977년 ‘1,000불 소득, 100억불 수출’ 목표를 달성했다.

1970년대에 이러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보건의료계가 염원하던 건강보험이 출범했다. 일부에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졸속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국민의 의료서비스 혜택을 늘리기 위해서 밤낮 고민하고 뛰었던 정부와 학계의 전문가들을 모독하는 ‘가짜 뉴스’이다.

보건사회부(보사부·현 보건복지부)는 1960년에 이미 연세대 의대 양재모 교수에게 유럽의 사회보장제도를 살피게 해 이듬해 5월 ‘사회보장제도 도입에 관한 건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지금 각종 복지정책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을 위한 제안들이 있었다. 제4차 5개년계획(1977~1981)에서는 ‘경제 발전’에서 ‘경제-사회 발전’으로 확대하도록 기획했다.

1963년 말 의료보험법이 제정돼 호남비료(1965)와 봉명흑연광업소(1966)에서 조합이 설립됐으며, 부산 복음병원의 장기려 원장을 중심으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설립(1968)됐다. 시블리 의료선교사가 설립한 거제지역사회개발보건원에 지역의료보험으로는 최초로 거제청십자의료보험조합(1971)이 설립됐다. 이들 조합은 대상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당연 적용 의료보험’은 아니었다.

연세대 의대의 강화지역사회보건사업(1975)의 일환으로 경기 강화군에 봉화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는데, 1982년에는 제2차 지역의료보험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

정부는 소득 1,000달러 목표가 달성된 1977년 1월에 의료보호사업부터 시작했다. 국민의 1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이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의료수가가 낮았지만, 지방에서 의료수요가 생기게 돼 의료계도 국민도 무료진료에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보사부 의정국장의 요청으로 6개월간의 의료이용을 중심으로 의료보호사업 평가를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1977년 7월에 당연 적용 의료보험이 시작됐다. 보사부에는 의료보험제도를 구체적으로 세부 기획할 인력이 없었다. 독일식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던 일본의 제도를 받아들였는데, 일본어에 능숙한 김일천 사무관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건강보험 본격 실시를 알리는 1977년 7월 1일 경향신문 1면.

당연 적용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보건의료계와 경제학계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고, 사회복지분야에서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면 가입자가 의료보험료를 정기적으로 납부해야 하기에 격론 끝에 5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2년 뒤에 300명 고용기관으로 적용범위를 넓혔고, 공무원 및 교원은 별도로 조합을 만들어 운영했다.

1981년 지역 주민의 의료보험을 준비하기 위해 당시 한국보건개발연구원에서 시범 보건사업을 하고 있던 3개 지역(강원 홍천군, 전북 옥구군, 경북 군위군)에서 ‘지역의료보험 시범사업’을 했다. 지역주민이 의료보험료를 부담할 소득 수준인지, 정기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지가 과제였다. 하지만 의료보험료 납부율은 기대 이하였다.

이듬해에 지역의료보험 제2차 시범사업을 한다기에 필자는 보사부 의료보험국 김영기 국장과 차흥봉 보험제도과장을 만나서 “강화군 보건사업지역의 봉화의료보험조합을 포함시키면 성공적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목포시, 보은군, 강화군이 제2차 시범지역으로 지정됐다. 강화군은 다른 곳에 비해 의료보험료 납부율이 매우 높았다. 지역주민들에게 의료보험에 관하여 쉽게 설명해 주고, 의료보험 가입자의 입원치료와 본인 부담 의료비 사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 것이 의료보험료 납부에 도움이 된 것이다.

의료보험 가입자가 중병으로 입원해 수술을 하여 치료비가 상당하였지만 본인 부담금은 부담스럽지 않아 의료보험 가입이 크게 도움이 된 사례를 듣고 주변의 이웃들이 적극 가입하게 됐다. 지역의료보험 시범 사업 평가를 하려고 목포에 들려서 살폈더니, 보험료 미납자의 대부분이 전문직과 중소기업자 등 충분히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경우임을 파악해서 이를 널리 알렸다.

이에 앞서 1970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예방의학을 전공하려는 필자에게 양재모 지도교수가 관심 영역을 물었다. 앞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의료보장이 과제일 것이라며 이 영역을 전공하겠다고 대답했다. 스승과의 약속에 따라 거제지역사회개발보건 프로젝트에서 일할 때 농어촌 최초로 거제청십자의료보험조합 설립을 주도했고, 강화군에서 지역사회보건 시범사업을 할 때 봉화의료보험조합 설립에 적극 참여했다. 연세대 재학생, 교직원과 가족을 위한 연세의료보험조합 설립(1976)에 간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한국의 의료이용(Utilization of Hospital Services in Korea by Insured and Non-insured Patients)을 중심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1980년대 초부터 복지 분야(최천송, 김영모, 손준규, 이광찬)와 보건정책관리 분야(한달선, 문옥륜, 유승흠)가 매년 세미나를 하면서 전국민의료보험을 주제로 토론했다. 필자는 1984년부터 11년 간 의료보험심의위원회(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공익대표 위원을 하면서 건강보험 발전을 위한 연구, 교육에 매진했으며 1988년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 ‘의료보험 정규 강좌(Case Studies in Comparative Health Insurance Systems)’를 개설해서 13년 동안 매년 세계의 보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보건의료 관련 교수와 학자들은 농어촌 주민보다 도시 주민의 의료이용도가 높다고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필자는 거제, 강화 보건사업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보아 동의할 수 없었다. 직장 의료보험, 지역의료보험 시범지역에서 의료보험 시작 전후 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의료이용도를 도시와 농어촌으로 구분해 비교 연구, 발표했는데, 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서는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으며, 도시와 농어촌은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지역별로 병원 건립 승인과 재정 지원 등 정책을 세울 때 도움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전국민 의료보험에 관하여 논란이 들끓었다. 전국민의료보험이 되면 나라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의견이 상당했다. 필자를 비롯한 보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전국민의료보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였고, 정당에도 알렸다. 마침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던 노태우 후보가 공약으로 채택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적용 의료보험이 시작한지 12년 만인 1989년 7월 전국민이 가입하게 돼 전국민의료보험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제도를 실행하는데 즈음해 특정 정책이나 상황 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연구하는 것을 학문적으로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이라고 한다.

의료보험을 시작하면서 의료수요가 증가할 것이기에 정부는 당시 의료수가를 조사하여 70% 정도로 낮추어 실시하도록 했다. 그런데 외과와 산부인과는 당시 일반 수가를 낮추어 보고하였고, 안과와 이비인후과는 그대로 보고하였다. 그 결과 외과와 산부인과는 진료 수입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졌고, 안과와 이비인후과는 의료수요가 증가되었기에 흐뭇해졌다.

    유승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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