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영어로 써야만 인정? 왜 한글 논문 홀대하나

[박창범의 닥터 to 닥터]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되고 진급하기 위해서는 많은 논문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문은 논문집을 통해 발표하는데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논문집이 있다. 하지만 임용되고 진급되기 위해서는 SCIE급 논문만이 인정된다.

SCIE란 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과학인용색인 확장)의 약자로 시중의 여러 학술지들 중에서 괜찮다고 판단되는 학술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SCIE에 포함될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이전에는 영국의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가 소유한 ISI(Institute of Science Information)이라는 회사가 제공하다가 현재는 독립하고 이름을 바꾸어 Clarivate라는 회사가 인수하여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Clarivate라는 회사가 영미권에 있다 보니 SCIE에 해당되는 학술지는 모두 영어로 된 학술지들이다. 따라서 의과대학교수들이 임용과 진급을 위해서 쓰는 논문들은 모두 영어로 써야 하고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연구는 영미권에서의 트랜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의학에서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영미권과 우리나라는 인종이 다르고 사회적인 문제(예를 들어 건강보험, 법령과 관련된 이슈)가 다르기 때문에 영미권 특히 미국에서 문제되는 이슈가 한국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문제가 되는데 영미권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경우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행히 최근에 한국에서 발행되는 논문의 상당수가 SCIE에 편입되어 이러한 문제가 많이 줄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최고의 명성을 얻고 높은 인용지수(Impact factor)를 가지는 학술지들은 영미권에서 발행되기 때문에 이러한 학술지에 논문을 내려면 외국,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 위해서는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학문의 세계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논문을 영어로 써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문제는 이렇게 노력과 고생을 해서 만든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학자일수도 있지만 정책입안자나 대중일수도 있다. 하지만 논문이 영어로 쓰이면 언어장벽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정책입안자들이나 대중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장벽은 학문의 융합과 교류에 많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심장을 전공한 필자의 경우 심장과 관련된 영어로 된 의학논문의 경우 비교적 쉽게 이해하지만 혈액종양내과나 호흡기내과, 안과와 같은 타분야의 영어논문의 경우 이해하기 매우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같은 의학논문도 이런 상태인데 영어로 된 법학논문이나 경영학논문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재미로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였다. 하물며 소위 대학교수도 이정도라면 정책입안자나 대중은 이런 영어로 된 학술지에 손도 못 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작성된 정책입안자들이나 대중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거나 유용한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렇다고 논문을 한글로 된 국내 학술지에 내면 교수는 대학에서 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서 학자들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번에 새로 발견한 것을 영문판 국제학술지에 낸다면 나의 연구실적은 오를 수 있지만 이 내용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정책입안자들이나 일반대중들이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산업재해와 관련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고민하다가 한글로 된 국내학술지에 내었고 출간되었다. 물론 대학에서는 진급이나 임용을 위한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더불어 출간비도 내가 내야 했다. 참고로 SCIE급 논문을 출간하는 경우 대학에서는 출판비에 대한 보조를 해준다.

현재의 대학들이 연구자를 평가하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는 있다. 무한경쟁시대에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기준으로 교수들의 SCIE급 논문 수 및 인용지수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연구결과의 국제화 및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대학들이 교수들에게 이런 논문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는 좋은 연구결과들이 SCIE급 유명 해외학술지로 빠져나가고, 국내 학술지도 SCIE급 학술지로 인정받기 위해서 영문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논문이 해외로 빠져나가 우리나라 학술지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영어로 작성되어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부와 대학도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논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한민국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논문의 경우 SCIE급 논문뿐만 아니라 한글로 된 논문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과 함께 다양한 평가방안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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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댓글
  1. 홈서비스 비구니

    사실은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사람이란 존재가 정말 옹고집쟁이죠… 특히 좀 자기가 좀 잘나가고 이름있는 흠흠, 내가 교수 아빠인데!라고 생각하면 정말 장난아니게 되는. AI가 기깔나게 번역을 잘하는 수준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2. 글 읽은 사람

    거의 처음으로 좋은 글 하나 봤네요. 우리나라 학문이 발전을 못하는 이유는 방향이 안을 향하지 않고 이렇게 밖을 향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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