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의학용어는 순우리말?” “그렇지 않다!”

“북한의 대기오염 사망률은 세계 1위이며 5세 이하 사망률은 남한의 14배입니다. 다재내성결핵을 비롯한 전염병 위험도 심각합니다. 남북교류 시대가 오면 보건 문제가 한반도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위해서 남북한 의학용어의 정리가 시급합니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이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의학용어사전 편찬 사업 추진을 위한 포럼’에서 김영훈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운영위원장(고려대 의대 순환기내과 교수)은 “남북의학용어사전 편찬이 남북철도 건설 못지않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의사들이 의학용어를 갖고 혼선을 가지면 병의 예방과 치료에 차질이 생긴다는 점에서 남북의학용어 편찬은 남북한 모두의 현실적 문제”라면서 “남북의 의료진과 환자들이 함께 진단과 치료, 예방에 대해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현재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포럼에 참석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런 점에서 “준비 없는 교류는 양측에게 커다란 위협”이라며 “의학용어 표준화는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선 의학용어사전 편찬 방향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북한의 의학교과서에 따르면 우울증은 ‘슬픔증,’ 야뇨증은 ‘밤오줌증,’ 휠체어는 ‘밀차,’ 마약중독은 ‘아이스중독’ 등으로 남한의 용어와 달랐다. 그러나 북한 의학교과서가 실제 쓰이는 용어와 다른 경우가 많아서 남북 전문가들이 빨리 만나서 사전 편찬 방향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고유어를 쓴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의학용어도 일반 용어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은 북한에서 얼음보숭이로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스크림’을 가장 많이 쓰며 상품명인 ‘에스키모’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어떤 의학용어를 쓰는지 알아야 한다.” -홍윤표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장

최정훈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이 고유어 의학용어를 고집한다는 것은 오해다. 북한 의학용어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11개 의대 교수들은 강의 때 제목과 키워드를 3~4개 외국어로 칠판에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형식상 남한의 용어와 표준화하고 통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의학용어의 표준화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적 접근이라기보다는 북한 의사와 주민들에게 의료지원을 비롯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의학용어사전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강력한 의료지원이라는 보따리 없이는 북한 정부와 학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의학용어집 발간 방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백영환 의학용어실무위원은 “의사협회에서 오랫동안 의학용어의 표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의학사전의 용어와 일상 임상에서 사용하는 용어 사이에 괴리가 적지 않다”며 “남북의 용어를 통합하기 전에 먼저 권위 있고 신뢰받는 조직을 갖춰 우리의 용어 표준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영욱 의사협회 학술자문위원회 위원은 “의협 의학용어집은 영어용어를 기준으로 7만6000개 단어를 망라한 방대한 분량”이라면서 “의협용어사전을 토대로 국제적 의학용어와 연관해서 북한의 의학용어를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화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은 “사전 편찬의 목표가 남북한 관련자의 소통에 있다면 표준화를 목표로 두기 보다는 현존하는 용어를 공유하는 작업이 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 “남북한 의학용어를 파악한 뒤 양측의 의학용어를 대조 분석하는 연역적 기초 연구가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는 “그동안 의협의 용어가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소모적인 갈등이 유발된 것도 사실”이라면서 “전문가들이 ‘정답’을 찾으려고 하다보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므로 남북한의 용어를 정리해서 공개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연희진 기자 miro22@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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