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는 췌장암 환자…가족들의 선택은?

[사진=Photographee.eu/shutterstock]
“췌장암이 다른 부위에도 전이가 된 상태입니다. 수술이 불가능해 항암치료만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유언장을 썼고 아내의 도움으로 삶을 정리하고 있지요. 저는 지금 삶과 족음의 경계선에 있지만 담담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우도 계시겠지요.”

말기 암환자인 김병철(가명) 씨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자신의 사망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환자 스스로 죽음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직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때라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죽음 교육?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다

호주의 퀸즈랜드주 의사협회가 ‘죽음’을 수학이나 역사처럼 학교의 정식 과목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의사협회는 “말기 암환자 가족의 경우,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어떻게 지켜야할지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아직까지 죽음에 대한 금기가 있는데, 이제는 삶의 마무리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젊은이들은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부족해 지인의 죽음에 크게 낙담해 여러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 퀸즈랜드주 보건담당 리차드 키드 박사는 “청소년들도 말기 질환 치료 중인 가족에 대한 결정을 직접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죽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가족들은 말기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도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회피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의사협회가 제안한 ‘죽음’ 과목에는 정신적, 신체적 능력에 대한 의료법 규정, 유언 준비, 연명의료 계획, 임종을 앞둔 환자의 생리학적 절차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윤리학, 생물학, 의학, 법학과도 융합이 가능해 죽음과 관련해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기사(Putting death on the school timetable)는 지난 7월 영국의 BBC 뉴스가 보도했다.

– 말기 암 환자, 어떻게 이별을 준비할까

국립암센타가 최근 공개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인 27만7075명이 암에 걸리고, 8만6281명이 숨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암 발생 대비 사망률이 낮은 편이지만, 올해도 엄청난 수의 말기 암 환자들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말기 암 환자들은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 가족들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상념에 휩싸여 있다. 이런 환자들이 가진 걱정과 근심을 표현하도록 하고 잘 들어주는 것이 가족의 역할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하고 친구처럼 대하는 것은 환자에게 큰 위안이 된다.

환자나 가족 모두 곧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며 미리 슬퍼하는 마음이 있다. 슬픔은 환자와 가족이 함께 나누는 것이 낫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가족이 슬퍼해준다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될 수도 있다. 환자가 원한다면 친지, 지인들이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환자가 살아있는 동안에 장례식을 미리 치러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 우리도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이윤성 원장(전 서울대 의대 교수)은 “우리도 죽음에 대한 의식 개선과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의료인들을 위해 소통 기술, 대화법 등의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하고, 죽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시행 9개월째를 맞은 연명의료결정법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하지 않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그 대상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품위 있고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연명의료는 말기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 의학적 시술로써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담당의사와 해당 전문의 1명이 환자가 의학적으로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하고,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관된 진술이 있으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자 가족 중에 반대자가 있다면 전원합의가 필요하다. 고등학생이 임종과정에 있는 할아버지의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호주 퀸즈랜드주 의사협회의 제안처럼 죽음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면 말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