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눈… 수년 전 환자 기록도 ‘뚜르르’

눈은 ‘바깥으로 튀어나온 뇌’로 불린다. 눈이 개체발생과정이나 해부학적으로 뇌와 연결돼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의 창’이 뇌 활동을 바깥으로 비추기 때문일까? 눈의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에 비유되지만, 필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과정을 통해 늘 뇌와 대화한다, 심지어 꿈을 꿀 때에도.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 교수(57)는 ‘뇌와 대화하는 망막’의 병을 치유하는 분야에서 우리나라 진료 및 임상연구의 틀을 짠 의사로 평가받는다. 한편으로는 국내 의사 중 처음으로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뇌신경 연구의 대가인, 같은 병원 고재영 교수(59)와 부부의 연으로 대화하는 ‘뇌 학자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최강의 여고 동창 ‘KG63’ 일원… 수술하고파 안과 지원

윤 교수는 어릴 적부터 뇌가 반짝반짝했고 눈이 빛났다. 경기여중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 경남 진해에서 상경했지만 경기여중의 입학시험이 사라지자, 신설학교였던 덕화여중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기어코 경기여고에 진학했다. 우리나라 여고 동창 중 가장 막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KG63(경기여고 63회)’의 일원으로 ‘김영란 법’의 주인공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조배숙 전 열린우리당 의원,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과 공부해 서울대 의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윤 교수는 의대에서도 빛나는 학생이었다. 남학생과 공부 경쟁에서 지지 않았고, 남자들만 메스를 잡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칼잡이가 되고 싶어, 안과에 지원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전공의 1년 때 남편과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도 ‘우수 전공의상’을 받았다. 그는 스승 이재흥 교수가 진료 장비도, 제대로 된 교과서도 없는 망막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미지의 영역’에 매력을 느꼈다.

망막박리 과정 알기 위해 토끼 300여 마리 황천길로 보내

1986년 남편의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수 길에 동행하면서 윤 교수의 눈은 더욱 깊어지고 밝아졌다. 스탠퍼드 대 안과의 ‘스타 교수’ 마이클 마머의 문하에서 망막이 눈에서 붙고 떨어지는 과정을 캐기 위해 토끼 300여 마리를 황천길로 보냈다. 1989년 안과 분야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남 캘리포니아 대학병원 도헤니 눈전문병원에서 망막 환자를 보며 세계 최고의 진료, 연구, 교육 시스템을 뇌에 고스란히 담았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데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꼈지만, 그곳 의사들은 그런 대학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딴 세상이었습니다. 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하는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에 찡한 느낌을 받았지요.”

윤 교수는 1993년 8월 세 돌을 맞은 서울아산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안과 김용재 교수가 망막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을 찾고 있었고 미국 최고의 안과병원에서 철저히 실력을 쌓은 윤 교수가 ‘딱’ 적임자였다.

매년 500여 명 수술… 한국 망막 진료-연구의 기틀 잡아

윤 교수는 당뇨병성망막증, 망막박리, 황반변성 등 온갖 망막질환 환자를 매년 500여 명씩 수술하면서 우리나라에 교육, 임상연구 등의 체계를 잡았다. 최근에는 후배 의학자들을 국제 학계에 진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2002년 아연이 부족하면 망막의 세포가 죽어 황반변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한 논문으로 국내 안과 최고 권위의 ‘톱콘 안과학술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기존 망막수술 보다 수술 부위가 적어 부작용과 회복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무봉합 유리체 절제술’을 국내에 도입해서 전국의 안과 의사들에게 전파했다. 윤 교수는 당뇨병성망막증 환자를 부분 마취해 치료하는 분야에서도 선도적이었다. 그는 2005년 황반변성 환자들에게 혈관내피세포 성장인자를 주입하는 치료법의 국제임상시험에 참여한 것을 시발로 지금까지 20여 개의 국제임상시험에 참가했다.

“망막 질환은 조기 발견이 열쇠… 좀더 많은 대화 못나눠 안타까워” 

“서울대병원에서 망막을 평생의 과녁으로 삼은 것, 미국에서 공부를 한 것 못지않게 서울아산병원에 온 것 역시 행운이었습니다. 병원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윤리를 강조해서 열심히 실력을 쌓으면 최대한 지원을 해줬지요.”

윤 교수는 수 년 전의 환자 기록도 기억할 만큼 뇌가 밝다. 그러나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와 진료실 밖에서 줄을 서 대기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초진 환자에겐 가급적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고 노력하고, 재진 이상의 환자에게는 간결하지만 명쾌하게 설명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때로 환자와 더 많이 대화하지 못해 울가망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환자 중 상당수가 쉽게 완치할 수 없어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안과분야 베스트닥터에 윤영희 교수

윤영희 교수에게 물어본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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