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빠진 의료분쟁조정법, 시민단체 반발

“의료잘못 입증 책임 소재 불분명하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빈번히 일어나는 의료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근거법인 ‘의료분쟁조정과

피해구제를 위한 제정법’(의료분쟁조정법)이 23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의료과오

입증 책임을 묻는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은 대한의사협회가 1988년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건의한

후 23년 만인 지난 11일 국회를 통과했다. 보통 환자와 의료진의 의료분쟁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송으로 이어져 해결까지에는 2~3년이 걸렸다. 이 분쟁을 소송이

아닌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전담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과오 입증 책임 소재를 환자와 의료진 중 어느 쪽에

둔다는 규정이 빠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 동안 진행된 의료소송은

환자 측에서 의료과오를 입증해야 하지만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의료정보의 독점성

때문에 승소율이 60%대에 머물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의료분쟁조정법의 국회 통과와 관련한 성명서를

통해 “의료사고 원인과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의료행위와 정보의 전문성과 접근성

때문에 현실에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국민이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환자에게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의사특혜법이며 환자들의 피해구제 실익과 실효성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도 “의료분쟁조정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환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소송에서 입증책임을 누가 지느냐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고려할 때 입증책임 전환규정이 빠진 것은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의료분쟁조정법이 국내 환자들의 이익을 생각한 실효성 보다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급하게 처리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르면 의료분쟁조정위의

분쟁 중재 대상에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해외 환자 유치와

진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료분쟁도 소송 없이 진행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법안”이라며 “강제력이

없는 위원회의 결정에 보험회사나 의사가 적극적으로 따를지도 의문이고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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